[과학산책]R&D 기업의 히든 챔피언, 결국 사람이다

[과학산책]R&D 기업의 히든 챔피언, 결국 사람이다

정부는 연구개발(R&D) 중소·중견기업에 출연연구소 및 대학기관을 연계해 전문 인력을 비롯한 유·무형 인프라를 지원하는 정책을 대폭 확대 중이다. 한국형 히든챔피언이라는 이름으로 우수 중견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서울대도 매년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 100명을 R&D 분야 우수 인력으로 양성해 중견·중소기업에 공급하는 방안을 내놨다. R&D 기업에 외부 수혈이 전방위로 이뤄진다는 말이다.

이러한 수혈이 R&D 기업이 겪는 만성적인 인력난 해소와 전문역량 강화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혈액을 공급받은들 건강하게 관리한 본인 혈액에 비할 수는 없다. 외부 지원이 일시적·부분적으로 문제를 해소할 수는 있지만 기업 본연의 체질을 개선하고 내실을 강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R&D 기업 스스로가 내부 인력 역량을 상시적으로 강화해 전문성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연적이다.

국내 산학연 R&D 인력을 대상으로 이러닝 콘텐츠를 제공하는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에서 지난 3년간 이러닝 이용자 10만여명 DB로 통계 분석을 실시했다. 그런데 산업계 이용자 결과를 살펴보면 의아한 대목이 존재한다. 전체 이용자 중 산업계 인력 만족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특히 사원·대리급에서 R&D 필수 및 전문 과정 수요가 매우 두드러졌다. 그러나 전체 중 산업계 이용자 비중은 현저히 낮다. 기업에 R&D 교육이 필요하지만 실상은 인력 교육이 필요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풀이된다.

이에 따라 KIRD에서는 보다 많은 R&D 중소·중견기업이 부담 없이 교육 콘텐츠에 접근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교육비 부담 완화를 위해 R&D 필수 교육 11개 과정을 무료화했다. 콘텐츠 품질을 높이기 위해 연내 8개 전문 과정을 자체 개발해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양질의 콘텐츠를 늘려가고 있다. 외부 전문 기관에서 우수 콘텐츠 수급을 확대하고, 대상과 수준별로 과정을 세분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전문 HRD 인프라를 별도로 마련하기 어려운 R&D 중소·중견기업이라면 이러닝을 적극 활용해 인력 역량 강화를 꾀할 수 있다. 실제로 기업 내부 HRD 제도로 KIRD 이러닝 수강을 도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저비용, 고효율 이러닝이 R&D 전문 교육을 향한 이들 갈증을 충분히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세계 각국은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등 STEM 분야 우수인재를 잡기 위해 영주권 부여, 비자 무제한 허용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중국은 2008년부터 천인계획이라는 범국가적 프로젝트로 우수 인재 양성과 해외 인력 유치를 추진 중이다. 영국, 프랑스 등도 IT 수업을 의무화하는 추세다.

이렇게 각국이 과학기술 인력 유치전을 벌이는 것은 모든 일이 결국 ‘사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깊이 인지하기 때문이다. 세계 히든챔피언 기업 2700여곳 중 절반이 장인정신과 기술력을 중시하는 독일 기업인 것도 같은 이유다.

대표적인 히든챔피언인 렌즈 전문기업 슈나이더 크로이츠나흐의 경영 철학에서도 그 비결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은 직업 교육에 필요한 기간을 최소 3년, 제대로 기술력을 발휘할 수 있기까지는 10년으로 보고 장기적으로 투자한다. 그 결과 미 항공우주국(NASA)에 쓰일 만큼 막강한 기술력을 보유한 렌즈 장인들이 충성을 다해 기업 성장을 이끌고 있다.

R&D 분야는 내부 인력이 지닌 전문 역량이 성과를 크게 좌우한다. 꾸준한 인력 개발이야말로 사업 근간을 탄탄히 다지는 핵심이다.

우리나라에도 R&D 중소·중견기업 육성을 겨냥한 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피를 즉각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가 이 판 승부를 가르는 무기다. ‘챔피언’이 되고 싶다면 무기를 먼저 장착해야 한다. 이는 바로 사업 근간에 자리하는 인력의 역량 개발이다. R&D 중소·중견기업을 챔피언으로 이끄는 히든 챔피언은 결국, 사람이다.

류용섭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장 ysyoo@kird.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