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데스크라인]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소비(消費, Consumption)는 돈이나 물자, 시간, 노력 따위를 들이거나 써서 없애는 행위다. 인간은 소비함으로써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얻는다. 소비는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 본능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소비하지만 과시하기 위해 소비하기도 한다. 소비는 자신의 생물학적 잠재력을 이성이나 타인에게 무의식적으로 광고하는 것이다. 소비재는 물론이고 문화상품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구매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본능적으로 과시하려 하는 가치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비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이득을 남기고 기업 이득은 가계로 흘러들어 다시 소비를 낳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든다.

이러한 고리가 약해지거나 끊어지면 생태계가 위험에 처한다. 인간은 불안감이 증가하면 소비를 줄인다. 소비 위축 역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이다. 인류 조상은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면 두려움과 불안감에 동굴에 숨어 있곤 했다. 안전한 동굴을 벗어나지 않고 적이 사라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현대 인류도 마찬가지다. 불안하고 두려울 때는 가만히 집에 머무르고 외부활동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불황에 맞서 경기회복을 기다리는 불안감도 유인원의 그것과 비슷하다. 경제 불안감이 확산되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씀씀이를 줄인다.

인간은 이익을 보는 기쁨보다 손해를 보는 슬픔을 두 배 정도 더 크게 느낀다. 이른바 손실회피 성향이다. 전통적 경제원리라면 서로 같은 크기의 감정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손실로 인한 상실감은 이득보다 더 크다. 결국 내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거나 뺏기지 않는 것에 더 집착한다.

현재 한국 경제는 이런 상태에 있다. 미래가 불안하다 보니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사내 유보금 쌓기에 급급하다. 최근 5년간 국내 30대 그룹 사내유보금이 170조원 넘게 늘어나는 동안 시설투자나 연구개발 등에 지출한 투자액은 2조원 남짓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가계는 소득 자체가 적고 미래 대비로 허리띠를 최대한으로 졸라매고 있다. 결국 소비-생산-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약해지고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정부가 소비촉진 카드를 내놓았다. 사상 최대규모 할인행사인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다음 달 1일부터 14일까지 총 2주간 개최한다. 행사에는 백화점(71개 점포), 대형마트(398개), 편의점(2만 5400개) 등 대형 유통업체 2만6000여개 점포가 참여한다. 업체별로 최고 50∼70% 할인율을 적용하며 전국 200개 전통시장과 16개 온라인 유통업체, 외식업종 주요 프랜차이즈 업체까지 나서는 등 국내 합동 세일행사 중 최대 규모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 추수감사절인 11월 마지막 목요일 다음 날인 금요일을 일컫는다. 블랙프라이데이를 기점으로 연말 쇼핑 시즌에 돌입하고 연중 최대 세일이 진행된다. 미국 연간 소비 약 20%가 이 기간 집중된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위축된 소비심리를 다시 되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기적 정책효과에 그칠 것이고 근본적인 소비위축 처방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일시적으로 지갑을 열게 할 수는 있어도 소비자의 본능적인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소비위축 원인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계소득을 증가시키고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중장기 대책마련이 뒷따라야 한다.

권상희 정책팀 팀장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