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관치 전력’이 낳은 현상

[데스크라인]‘관치 전력’이 낳은 현상

우리나라는 ‘관치(官治)’라는 단어가 아직 사회·경제·산업 곳곳에서 강하게 작동한다.

말 그대로 정부가 ‘부리는 대로’ 움직이는 사회질서와 경제시스템·산업구조가 오랫동안 고착화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직된 논의 구조와 민간끼리도 자유롭지 못한 경쟁·거래 질서가 아직도 시장에 넘친다. 자연히 외부 환경에 따른 악영향은 고스란히 흡수되면서 생동력과 활기는 잃어가는 악순환에 빠질 때가 많다.

암울했던 지난 시절 ‘관치 언론’이 낳은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직도 국민이 누려야 할 보편적 의료서비스는 ‘관치 의료’ 덫에 걸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관치 금융’이란 단어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꽃피고 있는 핀테크와 스마트금융 전반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듯 관치는 봉건국가 시절부터 무지렁이 백성을 다스리는 수단이 됐고 문명화된 지금까지도 국가 곳곳에 스멀스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들 어떤 분야보다 관치가 확실히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전력 분야’다.

국가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보니 한 치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되고, 잠깐의 방심조차 대재앙을 낳을 수 있으니 철저한 관리 주체로서 정부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한다. 무엇보다 민간이 다 떠안을 수 없는 대규모 투자나 기술 개발로 이뤄놓은 전력 선진국 위상을 확보하기까지 정부 공로를 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력·에너지 업계가 불확실성 절벽 앞에 놓인 적도 없다.

신재생에너지 업계는 폭락하는 전력기준가격(SMP)과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격으로 신규 투자는 고사하고 당장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다. 서구 선진국과 중국·인도까지 태양광·풍력 등이 급성장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구호뿐 그 뒤를 받쳐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싸고 발전효율 좋은 석탄발전에 쏟은 정부의 짝사랑이 이제 탄소배출은 줄여야 하고 그러면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늘려야 하는 ‘화살’로 되돌아왔다.

민간발전 업계 사정은 더 긴박하다. 내년 이후 그룹 내에서 존속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 정도다. 2011년 순환정전사태 이후 전력수급 안정을 꾀한다며 정부는 민간발전사를 대거 시장에 들였고 지금은 전력이 남아돌면서 “알아서 살아남으라” 한다. 물론 그때 발전사업 진출을 결정한 기업 책임이 존재한다. 그러나 당시나 지금이나 발전사업이 확고한 규제·허가 영역인 점을 본다면 ‘규칙’을 정하는 정부 책임이 더 크다.

규정이나 원칙보다, 안 해보고 경험하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혁신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언제까지 관치가 통할지 모르겠으나 이는 현 정부의 창조·창의 경제와도 정면 배치되는 흐름이다.

우리 전력산업에 새로운 경쟁과 혁신이 움트고, 진정한 에너지 신산업으로 활짝 꽃피려면 관치 구조에 우선 메스를 대야 한다. 아프겠지만, 그것이 전력산업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