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주파수 국민배심원제는 어떤가

[데스크라인]주파수 국민배심원제는 어떤가

‘2.1㎓ 주파수’가 뭐기에. 일반인에게는 용어조차 생소하지만 통신업계는 목을 맨다. 직원 모두가 비상이다. 총동원령이 떨어졌다. 여론전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분위기다.

통신사가 주파수에 사활을 거는 것은 사업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파트 건설업을 하려면 좋은 땅을 먼저 확보해야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좋은 주파수 대역을 확보해야 양질의 통신서비스가 가능하다. 가입자 확보에도 유리하다.

2.1㎓는 4세대 이동통신 롱텀에벌루션(LTE) 국제표준 주파수다. 땅으로 치면 강남 노른자위다. 이 황금주파수 가운데 SK텔레콤과 KT가 사용 중인 100㎒ 대역 임대기간이 내년 완료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12월 초까지 새로운 할당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에 격론이 한창인 ‘공천 룰’과 같은 ‘할당 룰’이 결정된다.

공천 룰에 따라 공천 향배가 갈리듯 할당 룰에 따라 주파수 주인도 갈릴 공산이 크다. SK텔레콤과 KT는 쓰던 주파수를 그대로 재할당해 줄 것을 요구한다. 기존 사용자가 많기 때문에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반면에 LG유플러스는 공정경쟁을 외치며 ‘회수 후 재경매’를 주장한다. 더 많은 금액을 써내야 낙찰 받는 경매방식이 국고 확충에도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주파수 전쟁은 표면적으로 명분 싸움이다. ‘이용자 보호 vs 공정경쟁’ ‘장비투자 효율성 vs 세수확대’ 등 설득 프레임이 격돌한다. 제3자가 보면 어느 쪽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슈들이다. 하지만 싸움의 본질은 ‘제로섬 게임’이다. 주파수가 한정된 자원이다 보니 한쪽에서 이득을 보면 상대 쪽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주파수는 한 번 낙찰 받으면 10년 이상 사용한다. 통신사들이 여론 왜곡까지 불사하며 언론플레이를 벌이는 이유다. 은밀한 작업 끝에 한쪽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기사도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전투구가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통신요금이 비싸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다. 통신사가 잇속만 챙기고 소비자는 뒷전이라는 정서도 강하다. 이런 와중에 주파수를 놓고 치고받는 모습은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질 공산이 크다. 통신료 인하 압박 심화→투자여력 상실→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심판을 맡은 미래부도 후폭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로섬 게임이다 보니 어떤 식으로 결정해도 특혜 시비가 불거질 게 뻔하다.

해법이 없을까.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문제일수록 원칙을 지키는 게 상책이다. 정책 대결과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국민의 자산인 주파수 정책 결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정치권에서 도입 논의가 한창인 ‘오픈 프라이머리’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주파수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전문가를 중심으로 국민 배심원단을 꾸려볼 수 있다. 투명한 정책 대결 장이 마련되면 통신사도 언론플레이로 여론을 왜곡하기보다 당당하게 논리로 겨룰 수밖에 없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국민적 냉소도 해소할 수 있다. 주파수 전쟁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릴 ‘공론의 장’이 절실하다.

장지영 정보통신방송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