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원전을 보는 `두 개의 시선`

[데스크라인]원전을 보는 `두 개의 시선`

우리나라에서 원전처럼 무겁고 어려운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통일’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화두다.

그래도 통일은 방식·과정상 시각차, 시간·비용상 어려움이 클 뿐 하나같이 ‘해야 하는 것’이라는 공감대는 있다. 하지만 원전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해야 할 것’과 ‘있는 것도 없애고, 더 짓지도 말아야 하는 것’으로 부딪힌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원전은 통일보다 어려운 주제다.

지금 경북 영덕이 이런 원전 문제로 뜨겁다. 찬반이 갈리다 못해 지역주민 간 감정싸움이 도를 넘을 정도라 한다. 맛좋은 대게로 이름 높고, 깨끗한 바닷물에 풍성하던 동해 인심에는 금이 갔다. 오는 11·12일 이틀간 원전 찬반 주민투표를 한다 하니 아마도 투표 막판 갈등은 극에 달할 것이다.

원전을 보는 하나의 시선은 ‘불안’이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같은 무시무시한 결과를 봤던 터라 믿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강하다. 지금 원전 건설이나 관리는 철저히 국가 사무로 다뤄지고 있다. 이번 주민투표가 국가 사무를 ‘하라, 하지 마라’ 결정할 수 없도록 못 박아 놓은 것도 같은 연장선에서다. 주민이 국가를 믿을 수 없다고 하고 두려워한다. 국가가 아직 믿음을 덜 줬고 신뢰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의 시선은 ‘필요’다. 인류의 필요는 발명과 개발로 이어졌다. 우리는 원전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미국·일본 눈치를 봐가며 핵심연구자를 잃는 희생을 겪어가면서까지 독자 기술로 확보했다. 지금은 한국형 원자로 모델로 첫 수출이 이뤄졌고, 두 번째, 세 번째 수출을 뚫으려 안간힘을 내고 있다. 미래 성장성이 큰 스마트원전이나 원전해체 분야에서도 우리는 국가적 필요에 따라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수출을 진행할 것이다.

원전이 국민이란 줄 위에서 불안과 필요로 흔들리는 동안 경쟁국은 어떤가. 일본은 후쿠시마로 침체됐던 원전산업 복원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은 자체 원전기술을 영국에 수출하는 가공할 만한 뒷심을 보여줬다. 프랑스, 스위스 등 원전 건설·원전해체기술 선진국은 잇따른 핵심기술 개발로 시장주도권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우리는 내부에서 힘을 소진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우리 국토가 안고 있는 업보이기도 하다. 해외 수출기술에 대한 증명이 있어야 하는데, 내부는 좁은 땅에 왜 더 지으려 하는가란 벽에 부딪힌다. 우리 국민도 써보지 않은 상품을 외국이 제값 주고 살 리 만무하다. 우리가 안전성을 인정하지 않는 상품에, 외국이 손을 댈 리 없다. 우리 원전은 이렇게 짓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국민은 투표로 정부를 이기고, 갈아치운다. 정부는 국민을 이길 재간이 없다. 해야 할 일이지만 ‘표 문제’에 직면하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원전이 그렇고, 쓰레기 소각장 문제가 그렇고, 내 아파트 옆 신축건물 건설이 그렇다.

결국 정부가 국민이 가진 ‘불안’을 허물어뜨리고 전력상·수출상 ‘필요’를 국민에 100% 설득해야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부 노력의 크기와 깊이가 더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여러 유혹이 있을 수 있다. 영덕 문제 해법은 정공법밖에 없다. 정부가 안전과 복지·성공 확신을 주면 된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경험을 갖고 해외시장에 당당히 나서라. 그것이 진짜 국가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