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완급조절

[관망경]완급조절

야구에서 투수는 완급조절을 잘해야 한다. 타자를 상대할 때마다 빠른 직구와 느린 변화구를 적절하게 섞어 던져야 한다. 완급조절에 당한 타자는 헛방망이를 돌리거나 허무한 내야 땅볼에 고개를 숙인다.

경기 전체를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초반부터 전력투구하면 후반에 버티기 힘들다. 상대 타자와 상황 등을 감안해 적절히 힘을 안배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달 5일 타결돼 산업통상자원부를 코너로 몰고 갔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협상 타결 후 한 달 뒤인 지난 5일 협정문을 공개했다.

지난 한 달은 한국 정부 TPP 참여 실기를 비난하는 국면이었다. 앞으로는 협정문을 분석해 참여 여부를 결정하고 협상에 임하는 본경기에 들어간다.

정부가 TPP 참여 기회를 놓친 것은 뒷배경과 관계없이 지적받을 만하다. 2013년 말 뒤늦게 관심 표명한 것만으로는 면피가 되지 않는다.

실기론은 여기까지다. TPP에 참여했어야 한다는 지적은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초기에 가입하면 좋았겠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이제는 현 상황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를 찾아야 한다.

TPP 대응이야말로 야구로 치면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우리 모습은 직구를 던지겠다고 포수가 아닌 상대팀 타자에게 사인을 주는 모양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TPP에 가입하면 많은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협상 타결 전이었다면 돌직구를 던져 빠른 승부를 봤어야 한다. 지금은 아니다. 협정문을 심도 있게 분석하면서 회원국 동향을 차분히 살펴야 한다.

급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서두른다고 빨리 가입하는 것도 아니다. 몇 달이 걸려서라도 꼼꼼히 협정문을 검토한 후 전략을 세워야 한다. 가입으로 얻는 이익보다 내야 할 수수료가 더 높다면 참여 여부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직구는 물론이고 커브, 슬라이더 등 다양한 구종을 준비해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