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햄과 소시지, 계속 먹어도 될까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햄과 소시지. 점심식사 단골 메뉴인 부대찌개에도, 맛있는 간식 핫도그에도 햄과 소시지는 빠지면 안 되는 재료다. 그런데 지난달 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그동안 맛있게 먹던 가공육을 1군(Group 1) 발암물질로 규정한다고 발표했다. 햄과 소시지 등 가공육이 석면, 다이옥신, 술 등과 같은 1군 발암물질이라니. 발표 직후 마트에선 햄과 소시지를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주부들도 대혼란에 빠졌다. 정부와 학계는 곧바로 과도한 섭취가 아니라면 큰 문제가 없다는 후속 발표를 하며 진화에 나섰다. 과연 우리는 햄과 소시지를 계속 먹어도 되는 것일까.

◇가공육, 발암물질 의미는

IARC는 50년전 설립된 WHO 산하 기구다. 세계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검토팀(Review Team)이 학술지 등에 보고된 역학조사(인체영향)와 동물실험 결과 등 논문을 검토해 사람에게 암을 유발하는 요인이나 습관, 물질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역할을 한다. 발암 요인이나 물질을 규정하는 데는 충분하고 확실한 학술적 증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에 1군으로 지정된 가공육은 맛이나 향미증진 등을 위해 염장·건조·훈제, 기타 가공과정을 통해 변형된 식육이다. 세계적으로 합의된 가공육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햄, 베이컨, 살라미, 소시지, 핫도그 등 질산염이나 아질산염이 첨가된 것을 가공육으로 분류한다.

2군으로 지정된 적색육은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말고기 등 가공하지 않은 포유류 살코기다.

1군 발암물질은 동물실험과 사람 대상 역학조사 결과 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고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2A군 발암물질은 동물실험 자료는 있으나 사람에게 암을 유발한다는 근거가 제한적일 경우다. 특정 인자가 인체 발암원으로서 증거 자료가 충분한지 여부에 따라 1군, 2A군, 2B군, 3군, 4군으로 구분한다. 이 분류는 암을 유발한다는 근거가 얼마나 충분하고 확실한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지, 유해의 크기에 따른 구분은 아니다.

현재 1군에 속하는 인체 발암인자나 물질은 다이옥신, 비소, 카드뮴, 벤조피렌, 간염 바이러스(B/C), 술, 흡연, 햇빛, 오염된 공기, 석면, 디젤 배기가스 등 118개가 있다.

IARC는 “가공육 식품을 매일 50g 섭취할 경우 발암 가능성이 18%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많은 연구결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 가공육 및 적색육 섭취가 암 발생과 관련이 있는 만큼 암 발병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가공육이나 적색육을 과다하게 섭취하지 않도록 권고한 것이다. 그렇다고 가공육과 적색육을 섭취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WHO도 IARC 보고서는 가공육 섭취를 중단하라는 것이 아니라 섭취를 줄이면 대장암·직장암 유발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뜻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인에게 얼마나 위험할까

1군 발암물질로 규정됐다고 해서 같은 1군에 있는 흡연, 음주, 석면 등과 동일한 위험 수준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인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살펴보려면 먼저 우리가 가공육을 얼마나 섭취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2010∼2013)에 따르면 우리 국민 가공육 섭취량은 1일 평균 6.0g 수준이다. IARC 발표에서 가공육을 매일 50g 섭취시 암발생률이 18% 증가한다는 것에 비춰보면 우리 국민의 가공육 섭취량은 우려할 정도가 아니다.

적색육 1일 평균 섭취량도 61.5g 수준으로 WHO가 발표한 매일 100g 섭취시 암발생률 17% 증가와 비교할 때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가공육과 적색육 총섭취량 권고안도 미국, 영국 등은 70g이며, 호주는 60~100g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가공육 및 적색육 총섭취량은 1일 평균 67.5g으로 외국의 권고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암발생률이 18% 증가한다는 것도 기존 암발생률이 1%일 때 18%가 증가해 총 19%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1.18%가 된다는 의미다. 현재 우리 국민 대장암 발생 추이에 대입하면 10만명당 약 58명(0.058%)에서 10만명당 68명(0.068%)로 10명(0.01%) 증가하는데 그쳐 대폭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햄과 소시지, 어떻게 먹어야 하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우리나라 국민이 가공육이나 적색육 섭취를 줄일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성장기 어린이나 노인 건강과 영양학적 균형을 위해서는 적정 수준 단백질 섭취가 필요하다. 때문에 현재 적색육 섭취량을 줄일 필요는 없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양의 육류를 매일 섭취하는 사람은 적정량을 섭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육류 섭취시 채소나 과일을 함께 섭취하고 탄 부분을 먹지 않는 등 조리방법을 신경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공육 역시 평균 섭취 수준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청소년 등 가공육 섭취량이 국민 평균보다 높은 경우는 주의하는 것이 좋다.

학계도 육류 섭취에 대한 순기능과 안전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회장 김대경)는 최근 긴급세미나를 열고 가공육 섭취량이 서구의 4분의 1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육류 섭취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밝혔다. IARC 발표가 식습관이 다른 서구 국가의 섭취량을 기준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김대경 학회장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지중해 식단을 따르는 사람들은 권고 기준의 2배나 많은 가공육을 섭취하지만 오히려 평균수명이 길다”면서 “독일,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도 이번 발표가 과도함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식품 관련 학계와 산업계는 우리나라 육류 섭취량이 과도하지 않으며 올바른 식습관을 통한 고른 영양섭취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식약처는 올해부터 학계, 관련기관 등과 함께 외국 섭취권고기준과 설정 근거 등 관련 자료를 수집·분석해 식생활 실태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하반기부터 가공육 및 적색육 섭취 가이드라인을 단계적으로 제시할 계획이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