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대학이 앞장서는 교육적 중재

[월요논단]대학이 앞장서는 교육적 중재

얼마 전, KAIST 학부생이 학교발전기금 3000만원을 맡겨왔다.

그는 2010년 지하철 내비게이션을 위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무료 배포했다. 사용자가 5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잘 만든 덕분에 카카오가 먼저 인수 제안을 해왔다. 발전기금은 매각 수익금 일부였다.

배우고 익혀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지식은 반드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누가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학과 공학은 21세기형 부가가치를 생산하기에 유리한 분야다. KAIST 학부생 사례처럼 재능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개인 인생은 물론이고 세상을 바꿀 만한 일들을 해낼 수 있다.

요즘엔 애초에 타고난 계급 때문에 배워도 안 되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자조가 늘고 있다. 젊은 층 신조어인 ‘흙수저’처럼 말이다.

흙수저라는 단어를 두고 누군가는 많은 것을 체념한 채 살아야 하는 ‘n포’ 세대의 슬픈 자화상이라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공한 사람의 일화를 앞세워 배경보다는 도전이, 낙심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둘 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실제로 올해 KAIST 신입생 중 부모가 경제적 약자인 비율은 2% 미만이다. 대한민국 아버지 중 43.2%만이 고학력이지만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들 평균은 86.9%에 달한다.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 성취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통계와는 무관하게 개인 재능과 노력만으로 우뚝 일어선 성공담도 실재한다. ‘타고난 숟가락’을 뛰어넘는 사다리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포기하고 주저앉은 학생들에게 극복하고 뛰어넘는 길을 열어주려면 대학이 앞장선 교육적 중재가 필요하다.

현재 영재교육기관이나 특목고 정원의 20%는 사회 통합 대상자를 우선 선발하게 돼 있다. 계층 간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다. 미국 MIT나 스탠퍼드 대학교, 영국 임페리얼 공과대학 같은 최정상급 대학들은 이미 소외계층 청소년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과학·기술·공학·의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을 대학이 직접 발굴하고 교육한다. 이것이 바로 교육적 중재다.

같은 이유로 KAIST에서도 과학 교육 프로그램(KAIST Science Outreach Program)을 시작했다. 전국의 사회적 배려대상 학생 중 과학에 관심을 보이거나 잠재력이 엿보이는 학생을 선발해 지원한다.

온라인 선행학습을 한 뒤 월 2회 오프라인 교육으로 토론과 강의를 진행하는 플립러닝을 실시하고 집중 캠프 기간엔 부모교육도 진행한다.

현직 교사와 KAIST 재학생인 멘토 조교, 각 지역 대학과 연구소에 재직하는 전문 멘토, 퇴직 교수와 연구원으로 구성된 시니어 멘토가 교사진으로 꾸려졌다.

시범 운영 후에 중간 결과를 살펴보니 참가자의 수학·과학 점수가 평균 24.7점, 14.8점씩 올랐다. 숫자만 나아진 건 아니다. 소외계층 학생들의 자아존중감이 향상되고 미래에 대한 도전 의식과 긍정적인 기대감이 상승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2018년까지 약 1800명의 학생을 이공계 인재로 키워낼 계획이다. 이르면 5년 혹은 10년쯤 뒤에 우리를 놀라게 할 성과의 주인공이 이 중에서 탄생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바뀐다. 특히 그 분야가 이공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강성모 KAIST총장 president@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