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세계 최고 전자정부 만든 SW업계 해외서 승부 걸어라

얼마 전 일본 내각부 IT전략추진담당관실에서 연락을 받았다. 내각부 고위 관계자가 주민등록번호제도와 관련한 전자정부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러 한국을 방문하니 브리핑을 부탁한다는 요청이었다. 오래전 주민등록번호제도를 도입해 국민에게 편리한 전자정부 서비스를 제공하고 유엔 전자정부 랭킹에서도 당당히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싶어 연락했다고 한다. 일본은 지난 10월 마이넘버 제도(한국 주민등록번호제도와 유사)를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긴급하게 한국 전자정부 현주소를 정확히 소개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고위관계자 일행에게 한국 전자정부와 국가정보화 추진사례를 소개했다.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주민등록번호제도를 활용한 혁신적인 한국 전자정부 서비스를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한국정부 전자정부3.0 추진사례 소개와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및 현금영수증제도, 전자민원 포털 민원24를 소개했다.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및 민원24서비스 소개는 지인 집을 방문해서 소개했다. 일반 가정에서 인터넷으로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이용하면 복잡한 서류를 첨부하지 않고도 연말정산 신고를 할 수 있고 10월 말 시점 연말정산 시뮬레이션으로 남은 두 달간 절세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이 자택에서 PC와 프린터로 주민등록등본 등 정부 혹은 지자체가 발행하는 각종 증명서를 인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통 용지에 인쇄한 증명서에는 위·변조 방지기술이 적용돼 있다는 설명에 고위관계자 일행은 무척 놀랐다. 한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도 몰랐다며 전자정부를 단순히 행정 전산화 레벨이 아닌 국가 행정서비스 혁신으로 승화한 한국의 선진적 전자정부 서비스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귀국했다.

여러 측면에서 유엔 전자정부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한국정부의 혁혁한 성과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관계자들이 이러한 외부 평가에 흡족해하고 있을 때, 우리 국민이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서비스를 누리고 있을 때 이러한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현장에서 땀 흘리며 노력한 한국 SI업계는 과연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를 만든 주역답게 상응한 대우를 받아가며 사업을 영위하고 있을까.

정부는 세계 최고 전자정부를 만들었으니 더는 투자할 필요가 없다며 정보화 예산을 삭감한다. 원활한 시스템 유지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비용은 힘 있는 외국기업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지불한다. 그룹웨어같이 각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이용 가능한 소프트웨어는 따로 구매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로 패키지를 개발해 아예 공공조달시장 씨를 말려 버리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첨언하자면 이러한 공공조달에서 중복투자를 없애 세금 낭비를 막는 것은 합당한 처사라고 평가하면서도 왠지 다른 방법은 없을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는 정부 발주 정보시스템 구축사업에 대형 SI기업이 공공사업을 독차지하고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저가로 중소기업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떠넘기거나 혹은 중소기업이 개발한 솔루션에 제값을 쳐주지 않고 저가 납품을 요구하는 등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를 착취하는 악습이 만연했다고 한다. 정부가 이를 배제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산업진흥법을 개정, 시행 후 대형 SI기업은 공공정보화 사업에서 철수, 동법의 시행 이후는 중견 SI업체를 중심으로 공공정보화 사업발주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취지와는 달리 중견 SI업체들은 중소기업의 제값 받기를 기대하고 만들어진 법의 취지가 무색하게 이제까지 대기업 SI업체들 악행을 답습하여 중소기업에 개발비와 솔루션가격 인하를 강요하는 구태를 계속하는 등 차라리 대기업 SI업체가 주도하던 시절이 더 좋았다는 탄식도 나오는 현실이라고 한다.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를 만들었으면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를 만든 주역들에게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추세에 맞추어 신규 수요를 창출, 각 기업이 새로운 전자정부 서비스를 개발할 환경을 조성해 주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또다시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순환적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또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가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고 적절한 유지보수 비용 지불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중소기업이 각각 공정한 환경에서 거래할 수 있는 거래 관행도 정착시켜야 할 터다.

당사는 십수년간 일본 공공시장에 참여해 한국 전자정부 성공 노하우를 무기로 공공기관에 정보화 컨설팅을 추진 행정, 의료, 교육 분야에서 한국 대기업 및 중소기업과 함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근자에 들어서는 금융이나 건축 분야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감히 한국 소프트웨어 업체에 제안을 한다면 좁디좁은 한국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휘말려 제살 깎기 경쟁에 휘둘리지 말고 국내에서 세계최고 전자정부를 구축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 시점이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yomutaku@e-corporation.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