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글로벌 기상이변시대 미다스의 손 `날씨 빅데이터`

[미래포럼]글로벌 기상이변시대 미다스의 손 `날씨 빅데이터`

성웅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을 무찌르는 기적을 이룬다. 하지만 ‘오후 2시께 소나기가 쏟아져 잠깐 물이 불었다’ ‘바람이 세게 불다가 그쳤다’ 등 하루하루 날씨가 자세히 기록된 난중일기를 보면 결코 기적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명량대첩은 날씨에 따른 울돌목 물 흐름을 평소 관찰하고 치밀하게 예측, 대비한 결과였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은 겨울철에 일시적으로 부는 남풍을 이용, 화공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조조의 80만 대군을 물리친다.

이와 반대로 전쟁의 신 나폴레옹이 러시아의 혹독한 눈보라를 예측했더라면 유럽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러시아 추위를 우습게 여긴 결과 동장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붙게 되었다. 몽골 쿠빌라이 칸은 3500척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일본 정벌에 나섰지만 때마침 쓰시마 해협을 통과하던 태풍이 규슈 해안을 상륙하려던 수십만 몽골 대군을 삼켜버렸다.

기상학자이기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2400년 전 “날씨는 인류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말했듯이 날씨는 미리 예측하기에 따라 아군이 되기도, 적군이 되기도 한다.

민간 기업에도 날씨는 예외 없이 아군이 되기도, 적군이 되기도 한다.

글로벌 1위 곡물 업체인 카길은 기상위성을 자체적으로 운영, 보유한 세계 식량생산지대 농작물을 실시간으로 촬영한다. 각 지역 날씨 정보를 모아 곡물거래나 투자 기초자료로 이용한다. 확보된 날씨 빅데이터를 활용한다. 세계 곡물 작황을 예측하고 배팅하는 선물시장에서 200명 규모 날씨 파생상품 트레이딩 룸을 운영하며 날씨 위험에 헤지한다. 카길이 글로벌 농산물과 식품, 작물, 원자재 무역 등에서 점유율 40%를 넘는 이유는 이러한 날씨 경영 덕택이다.

코카콜라는 상품별 수요가 급변하는 임계 온도를 적극 활용한다. 기온이 높으면 값을 올리고 내리면 반대로 대응한다. 노바티스는 날씨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을 두고 온도 상승에 따른 말라리아 등 전염병 피해발생 규모를 미리 예측·예방한다. 제품 생산에 투자하는 등 날씨 경영을 적극 활용한다. 발열 내의 ‘히트텍’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한 유니클로는 중국 시장 미래는 경기보다는 날씨라고 예측할 정도다.

이렇듯 글로벌 기업은 오래 전부터 날씨가 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날씨경영에 주목해왔다.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에 따르면 날씨 정보 활용가치는 연간 3조5000억~6조5000억원에 이른다.

갈수록 심해지는 글로벌 기상이변으로 날씨 빅데이터는 이제 ‘미다스의 손’이 됐다. 지난 연말 슈퍼엘니뇨 영향으로 미국 뉴요커는 화이트크리스마스가 아닌 반소매 산타복으로 조깅을 즐겼고 워싱턴DC는 벚꽃이 만발했다. 이러한 기상이변은 배터리 수명 연장을 이끌어 자동차 부품업체는 울상이 되고 보험사는 사고 감소로 콧노래를 불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엘니뇨가 시작되면 12개월간 비에너지 상품 가격이 평균 5.3% 오른다고 분석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지난달 평년기온을 6도 웃도는 이상기온으로 골프장은 미소를 짓고 스키장은 울상이 되었다. 겨울옷 구매를 주저하는 소비자를 잡고자 예년보다 빨리 할인행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기후변화에 영향을 덜 받는 융·복합 상품도 선보였다. 특히 에어컨, 제습기, 겨울의류, 난방제품 등 계절성 상품을 취급하는 회사에서는 날씨 빅데이터가 최고 영업사원으로 부상한지 오래다.

글로벌 경제활동 중 80% 이상이 날씨에 의해 좌우되는 등 이제 날씨는 단순 예보가 아닌 ‘돈’이다. 민관할 것 없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더구나 기상 투자는 열 배 이상 효과를 거둔 결과 농업뿐만 아니라 야외 활동이 필요한 레저나 관광업에서 유통이나 제약에 이르기까지, 날씨 빅데이터가 미다스의 손으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기후변화와 국지적 위험기상 대응능력을 확보하고자 기상청은 수치예측모델 향상에 필요한 선진 슈퍼컴퓨팅 환경을 구축한다. 오는 6월부터 기상기후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민간에 전면 개방하면 우리는 인터넷으로 관측, 예보, 수치자료, 기상지수 등을 직접 분석, 활용한다. 스타트업이나 시장진입자 등 민간에서 사업화 모델 발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슈퍼컴퓨터 4호기가 가동되면 전 지구 예보모델 해상도가 향상되고 한반도 기후 예측에 필요한 장기 예측모델도 동시에 수행한다.

국내외 환경변화에 적극 대응할 추진 동력을 확보하고자 기상청이 산·학·관·연 전문가를 망라한 기상기후빅데이터포럼을 다년간 운영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 결과 민관 공히 활용성 높은 빅데이터 융합과제, 시범서비스 도출 등 결실을 거뒀다. 나아가 중점과제로 날씨 민감형 감염병 발생, 지자체 날씨별 교통사고 위험도, 신용카드와 날씨데이터를 활용한 지역별 매출분석 등 예측서비스를 개발했다. 다양한 분야와 융합 아이디어를 발굴하려 수요자가 직접 참여하는 날씨빅데이터콘테스트도 개최, 국민에게 날씨 빅데이터 중요성을 일깨운 바 있다. 이러한 포럼 노력이 반복되고 국가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글로벌 기상이변 시대 미다스의 손인 날씨 빅데이터는 우리 경제 성장에 이바지하고 관련 인력 수요로 청년실업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다.

오재인 단국대학교 상경대학장 jioh@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