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디지털 변환이 가져온 신발산업의 경쟁력

[미래포럼]디지털 변환이 가져온 신발산업의 경쟁력

우리 제조업은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이 17.8%, 자동차 수출이 18.8% 감소하는 등 제조업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5% 감소했다. 철강, 조선, 정유 산업은 이미 몇 년째 적자다. 사업을 해서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 3분의 1에 이르고, 이 상태가 3년 연속인 기업이 15%에 이른다.

중국 기업이 경쟁자로 바뀌면서 생산 과잉으로 인한 저가 공세가 큰 원인이다. 이에 더해 엔화·위안화 절하, 중국 경기 둔화와 국제유가 하락까지 겹치니 빠른 시간에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에 고착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다.

선진국들은 제조업 중요성에 주목하고 경쟁력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난 제조 기업이 생산지 인건비 상승 등으로 다시 회귀한다. 낮아진 에너지 가격, 낮은 물류비, 정부의 파격 지원이 회귀를 가속시킨다. 이에 더해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기술로 굴뚝산업이 스마트해졌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산업인터넷’을 내세우고 소프트웨어 회사, 빅데이터 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이에 더해 구글, 테슬라 등 혁신 기업은 산업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는 새로운 도전과 탐험을 멈추지 않는다. 독일은 전통 제조업에 정보기술(IT)을 결합, 생산 효율성을 30%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인더스트리 4.0 정책에 박차를 가한다.

값싼 인건비를 좇아 생산기지를 국외로 이전한 우리 제조 기업이 현지의 인건비 상승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 소진된 것이다. 여기에서 제조업의 경쟁력은 결국 지속된 기술혁신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심해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속한 디지털 변환이 필수다.

디지털 변환으로 다시 살아나는 우리 산업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신발 산업이다. 선진국에 비해 저임금이던 1980년대까지 신발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세계 신발의 3분의 2를 생산하는 중국으로 산업은 떠났다. 1977년에 우리 수출에서 신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5%였으나 2000년에는 0.1%로 감소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신발 제조 기업은 경기 침체에도 역대 최고 실적을 보이고 있다. 주요 기업은 연 100% 이상 영업이익이 증가하고 있다. 2014년 우리 신발 수출은 5000억원 규모이며, 연 7%씩 성장하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은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20% 성장, 2015년에 1조3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신발 산업이 디지털 변환으로 첨단산업화 됐기 때문이다. 신발은 내구성을 중시하는 대량생산 제품이었지만 요즘은 다양한 디자인과 다기능 패션화로 진화하면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신발의 재단, 재봉, 제조를 각각 다른 공장에서 처리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동화된 한 라인에서 처리한다. 신발 전용 3D CAD/CAM 소프트웨어로 발 모양 틀, 윗 갑피, 바닥판을 통합해 설계한다. 패턴 배열 최적화 알고리즘으로 자재를 절감한다. 3D프린터를 사용하니 30~50일 걸리던 시제품 제작 소요시간이 1~2일로 단축됐고, 투입 인력도 12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제품 생산에서도 컴퓨터 재단·재봉, 센서·로봇을 활용해 33단계 조립 공정을 14단계, 16단계의 재봉 공정을 3단계로 각각 단축했다. 자재의 적기 공급과 관리를 위해 ERP과 SCM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한 국내 기업에서는 첨단 소프트웨어를 도입, 23일 걸리던 생산 공정을 12일로 단축했다.

디지털 변환이 신발 생산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서 신발 생산원가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해졌다. 이제 경쟁력은 오랜 경험에서 쌓인 암묵지의 유무에 있다. 제품을 세련되고 편하게 만들기 위해 ‘복숭아뼈 안과 밖 재질의 두께를 몇 ㎜로 해야 한다’는 등의 암묵지는 숙달된 신발 장인만의 것이다. 암묵지를 설계와 관리 소프트웨어(SW)로 담아내는 능력이 승부의 관건이다. 이에 따른다면 신발 산업에 오래 매달려 있던 우리에게 승산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신발은 첨단기술의 경연장이다. 보행으로 전기를 발생하고 환기장치, 조명장치, 스피커 장착은 기본이다. 센서를 부착해 데이터를 모으고 인터넷과 연결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공지능으로 신발이 ‘건강관리 센터’로 발전하는 것이 추세다.

우리 연구개발(R&D)의 역량을 집중, 신발산업의 영광을 다시 찾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KAIST 명예교수) jkim@kaist.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