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투자처 못찾아 쌓이는 기업 현금

[데스크라인]투자처 못찾아 쌓이는 기업 현금

우리 기업이 사내에 쌓아 둔 돈이 계속 늘고 있다.

기업 활동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투자를 하고 이를 통해 매출과 수익을 내야 한다. 다시 벌어들인 돈으로 투자를 늘리며 미래에 대비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우리 기업은 투자보다 현금 확보에 더 열을 올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시중통화량(M2) 가운데 기업이 보유한 금액은 590조7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70조원(13.4%)이나 늘었다. 2010년 403조원이던 기업 보유 통화량은 5년 만에 50% 가까이 증가했다.

불확실성 때문이다. 기업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서 ‘현금이 최고’라는 인식을 한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경기 전망 악화로 기업이 투자보다 유동성 확보에 비중을 둔다.

기업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현재 대내외 상황에서 투자할 만한 새로운 산업이 보이지 않는다. 무모한 투자로 위험을 떠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은 기본 속성상 돈이 된다 싶으면 어디든 간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기존의 산업에 추가 투자를 한다고 해서 더 큰 수익을 낼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어설픈 투자로 복권을 긁기보다는 좀 더 확실한 타깃이 나올 때를 대비한 현금 확보가 중요하다.

연초부터 수출이 주춤하고 기업실사지수(BSI) 등 여러 경제지표가 좋지 않다. 정부는 기업이 더 적극 나서길 요구한다. 기업 투자와 고용이 늘어야 경제 활력이 제고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 계획경제 시기와 달리 정부가 기업을 압박할 수도 없다.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더구나 올해는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괜한 오해를 사는 것도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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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정부 탓을 하고 정부는 ‘기업 역할론’만 제기해서는 답이 없다.

정부가 유망 산업을 발굴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두루뭉술한 규제 타파보다는 한시로라도 실제 기업이 요구하는 문제를 콕 찍어서 해결하는 ‘맞춤형 정책’도 고민해 볼 때다.

기업은 도전적 시도를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의 고성장에는 과거 기업 총수의 ‘야성적 도전(Animal Sprit)’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움츠리고 고민만 해서는 앞서갈 수 없다. 창의적 리더십으로 미래와 신산업,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도전하는 일은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계속돼야 한다.

대기업 간 협업도 새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다. 우리나라는 ‘대-중소기업 상생’만 강조해 왔다. 우리 대기업은 해외 기업과의 협력에는 관심을 높이면서도 국내 대기업과 공조하는 일은 극히 적다. 삼성과 현대차가 미래 자동차에서 힘을 모으고, 삼성과 LG가 미래 디스플레이에서 협업한다면 시장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 위주의 주변 생태계도 새로운 모멘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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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에 ‘위기의식’은 가져야 한다. 하지만 침체 뒤에는 활황이 온다. 그때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먼저 준비해야 한다. 이에 걸맞은 선제 투자도 필요하다.

김승규 전자자동차산업부 데스크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