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필리버스터 후유증

[관망경]필리버스터 후유증

한 부모가 어린 자녀 둘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주위 시선은 이들에게 쏠렸다. 엄마는 말했다.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민주주의가 어떤 건지를 직접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요.”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지난달 23일 시작돼 삼일절 1일에도 지속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기록이다. 더민주는 이날 필리버스터 중단을 공식화했다.

그동안 여론 호응도 높았다. 국회방송과 팩트TV는 필리버스터를 생중계해 때 아닌 시청률 대박을 터뜨렸다.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을 패러디해 ‘마이 국회 텔레비전(마국텔)’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필리버스터 첫번째 주자로 나선 김광진 의원.
필리버스터 첫번째 주자로 나선 김광진 의원.

본회의장 방청석도 북적거렸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이와 가족 단위 방청객이 특히 늘었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 필리버스터’가 진행됐다.

하지만 벌써부터 사람들은 필리버스터 다음이 걱정스럽다. 인기드라마나 중요 스포츠중계가 끝난뒤 허탈감 같은 것일 게다. 필리버스터를 주도한 야당은 무엇을 얻고 단상에서 내려왔는지 의심을 살게 분명하다. 여당은 필리버터스터로 널리 각인된 ‘국민 사찰법’ 이미지를 ‘국민 안전법’으로 원상복구시키기 힘겨워 보인다.

후유증을 잊게 만들 방법은 하나다. ‘변화’다.

19대 국회가 남긴 갖가지 불명예스러운 기록과 정치권 구태를 답습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여선 안된다. 필리버스터 ‘그 다음’이 중요한 이유다.

야당은 밤낮을 새가며 필리버스터를 이어갔던 그 열정과 끈기를 갖고 비판과 견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여당은 국회 권력이 이미 국민에게 넘어갔음을 직시하고 필리버스터 정국이 가져온 그 변화의 단초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여야 어느쪽이 더 정치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혁신하려는지는 4.13 총선 표 결과로 명확히 나타날 것이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