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게를 똑바로 걸어 가게 할 수는 없다

선거는 `정치의 꽃`으로 불린다. 참정권과 피참정권이 동시에 구현되는 최대 이벤트다. 국민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권재민`을 실감하는 정치 행위다. 당선자는 국민으로부터 권력과 권한을 위임받는다. 유권자는 당선자에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기대한다.

현실은 어떤가. 이상과 현상 사이에는 부조화가 존재한다. 기대에는 실망이 따른다. 유권자는 4년마다 낙담을 되풀이한다. 변화를 외치던 4년 전 후보는 쇄신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피타쿠스는 “지위가 그 사람의 실체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힘이 주어지는 순간 그 사람의 본 모습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공감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어쩌면 4년마다 국민은 바보(?)가 된다.

우리 정치권은 왜 이렇게 불신을 받을까. 희망을 제시하기는커녕 절망을 심어 줬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 해결보다 정치적 밥그릇 싸움에 몰두한 결과이기도 하다. 가슴에 금배지를 다는 순간 그들만의 리그 속으로 빠져든 탓이다.

적잖은 의원들의 행동 양식은 선거 전후로 180도 달라진다. 우선 콧대 높은 전·현직 국회의원도 선거 유세 기간에는 시민에게 머리를 숙인다. 몇몇 지역에서는 한 표라도 더 받기 위해 큰절을 한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상의 가치는 금세 잊힌다. 악수를 먼저 건네던 후보자는 온 데 간 데 없다. “기호 ○번 홍길동입니다”라고 읍소하던 후보가 선거 이후 “당신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 게 현실이다.

국회의원을 직업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정치 불신을 부추긴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국회의원처럼 `봉사적 리더십`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4·13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판세가 요동치면서 정치권도 막판 표심 잡기에 분주하다. 각 당은 한결같이 심판론을 얘기한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를 비판하면서 `문제는 국회다`라고 외친다. 더불어민주당은 현 정부의 경제 실정에 초점을 맞춰 `문제는 경제다`를 내걸었다. 국민의당은 `문제는 정치다`를 외치며 정치 개혁을 강조한다. 3당 슬로건에는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잘 반영돼 있다. 강력한 해결 의지도 엿보인다. 문제는 `제 머리 깎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이번에도 바보가 돼선 안 된다. 다른 결과를 기대하면서 같은 방법을 되풀이하기에는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 경기 불황과 내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정치 지도자에게 국회 입장 티켓을 줘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에다 수출절벽과 내수침체가 심상찮다. 지금은 잃어버린 10년으로 상징되는 일본식 장기 불황을 막아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다.
그동안 선거는 지역 기반 정서에 좌우돼 왔다. 하지만 의례로 행사하는 관성에 그친 투표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힐 수 없다. 20대 정치 일꾼을 뽑는 선거에서는 국민과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을 선택해야 한다. 게를 똑바로 걸어 가게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노력과 시간을 들여도 바뀌지 않는 것에 표를 줘선 안 된다.

[데스크라인]게를 똑바로 걸어 가게 할 수는 없다

김원석 국제부 데스크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