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벤처, 기업가정신이 먼저다

오는 20일 벤처기업가이자 엔젤투자자이던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의 1차 공판이 열린다.

벤처업계는 호 대표를 신화적 인물로 꼽는다. 서울대 전기공학과와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부인과 공동 창업했다. 회사를 키운 뒤 성공리에 매각했다.

그런 그가 지난 4월 22일 정부 보조금을 편취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2014년 5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팁스`(TIPS)에 선정시켜 주는 대가로 5개 스타트업 업체로부터 29억원 상당의 회사 지분을 챙긴 혐의다.

이를 두고 벤처업계는 정치적 희생양, 벤처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이 시작됐으니 진실은 법원에서 공정하게 가릴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더불어 이번 사건이 벤처 생태계 전반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기회에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그동안 벤처업계는 정부로부터 참 많은 혜택을 누려 왔다. 2000년을 전후해 불던 1차 벤처 붐 당시부터 관련법과 지원제도는 많은 이의 노력으로 보완돼 왔다. 문제가 된 팁스는 엔젤투자 1억원을 받으면 정부자금을 9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한국 벤처제도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말이 실감난다. 벤처 생태계도 세계적 수준일까.

20년 벤처 역사에서 성공한 벤처기업과 기업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몇몇 벤처기업인은 후진을 위해 사재를 털어 가며 생태계 육성에 나서기도 한다.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해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이를 재투자하며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최근 성공했다는 이들의 행보는 부정적 소식이 더 많이 들린다.

지난해 성공적 인수합병(M&A)을 통해 수백억원을 벌어들인 몇몇 전직(?) 벤처기업인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최근 공모주 청약에 열을 올린다. 수백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공모주 청약에 100억~200억원의 돈을 넣고, 배정받은 주식을 상장 첫날에 팔아치운다. 이로 인해 며칠 사이 최소 몇천만원 이상의 수익을 얻는다. 매달 한 번만 해도 연간 수익이 수억~수십억원에 이른다. 이너서클을 만들어 투자 정보까지 공유한다.

물론 이들의 행위는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는다. 누구보다 노력해서 벌었을 돈을 기반으로 또 다른 수익 창출에 나서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적합한 삶인지도 모른다.

벤처 생태계 입장에서 볼 때 `반가운 행태`는 분명 아니다. 열심히 사업하는 후배 벤처인이 보고 배울까 우려된다. 이들에게는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인식만 존재한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면 과연 벤처가 대기업 위주 성장 정책으로 한계에 다다른 한국 경제의 대안이 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최근 벌어진 호 대표 사건을 계기로 벤처업계에는 `다음은 누가 될 것`이라는 루머까지 나돈다고 한다. 비슷한 관행이 업계 전반에 존재했다는 반증이다.

비상장 기업의 가치는 투자받는 기업의 동의 아래 결정된다. 기업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투자를 안 받으면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투자받는 기업은 `절대 을`이 된다. 팁스 같은 혜택이 따르는 투자라면 관계는 더 그럴 수 있다. 선배 벤처가 더 세심하게 살피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벤처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혁신 아이디어, 도전정신과 함께 기존 기업과 다른 `기업가정신`도 갖췄으면 한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