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하고 싶은 연구 vs 해야 할 연구`

후배 기자에게 가끔씩 던지는 우문이 있다. 본인이 쓰고 싶은 기사와 독자가 원하는 기사,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일장일단이 있을 뿐이다. 작정하고 쓰겠다는 기사는 열의가 남다르다. 그만큼 완성도도 높다. 대신에 기사 반응은 시큰둥할 것이다. 독자가 원하는 기사는 개인의 관심이 다소 떨어질 게 뻔하다. 반대로 기사가 나간 후 시장이나 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크고, 시장 반응은 빠르다. 경험으로 봤을 때 후자를 취재할 때가 더 신나고 사명감도 컸다는 기억이 새롭다.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제 1차 과학기술전략회의 모습. <자료:청와대>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제 1차 과학기술전략회의 모습. <자료:청와대>

최근 발표된 과학기술 정책을 보면서 든 잡생각이다. 정부는 지난주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민·관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했다. 연구개발(R&D) 투자에 비해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국내 R&D 투자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비는 4.29%로 세계 수위를 차지한다. 전체 연구비와 연구 인력, 연구 논문, 특허 생산 규모 등 정량 수치도 미국·중국·일본·독일 다음으로 세계 5위다.

반면에 성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친 게 사실이다. 연례행사처럼 나오는 `노벨상 타령`이 대표 사례다. 새로운 회의체를 만들기로 결정한 데에는 그만큼 R&D 분야에서 혁신이 사라지고 나랏돈이 샌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회의체 신설과 맞물려 여러 혁신 방안이 제시됐다. R&D 전략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과학기술 분야를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기능은 물론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조타수, 시스템 등 구조적인 문제를 위한 해결사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강조했다.

필요하고,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올 지는 솔직히 미지수다.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는지 물어야 한다. 바로 내부로부터 변화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손봐야 하는 단골 메뉴가 R&D 분야의 투자와 성과 엇박자였다.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이벤트였다. 빈번하게 여론의 도마에 올랐지만 그뿐이었다. 변죽만 울리고 실행에 옮겨진 건 극히 드물었다. 모두 내부 혁신보다 외부 충격이 먼저 가해졌기 때문이다.

혁신을 너무 거창한 화두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연구 문화를 바꾸는 게 출발점이다. 출연연구소를 포함해 정부 돈을 쓰는 모든 연구원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바람직한 연구 문화, 앞에서 구구절절 이야기한 언론사 사례와 비슷하다.

연구자 입장에서도 `해야 할 연구`와 `하고 싶은 연구`가 있다. 단언컨대 엔지니어 속성에 비춰볼 때 하고 싶은 연구를 선호한다. 장점도 있지만 시장과 괴리될 가능성이 크다. 이래서는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질 리 만무하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 성과와 지식을 생산해야 가치 교환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R&D를 기능이 아닌 통합 관점에서 보는 시각의 교정도 필요하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이 지식이 기술 이전을 거쳐 상품이나 서비스에 적용된 후 시장에서 거래될 때 완성되며, 이것이 R&D 혁신이라는 관점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정부 자금에 의존하는 `천수답 연구원` `고급 한량 기능인`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다. 혁신 메시지는 내부에서 시작할 때 울림이 큰 법이다. 뼈를 깎는 내부의 자성 없는 과학기술 혁신은 어불성설이다.

강병준 통신방송부 데스크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