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소송에 망가지는 중소기업들

[데스크라인]소송에 망가지는 중소기업들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처럼 브렉시트(Brexit) 등 글로벌 악재가 발생할 때 더 그렇다. 경영 적자가 발생하면 회사가 불안해지고, 경영자에 대한 불신이 늘어난다. 적자가 누적되면 될수록 내부 분란으로 이어질 개연성도 커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분란뿐만 아니라 법정 소송을 겪는 기업은 도산까지 걱정하게 된다.

우리나라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분야 1호 창업을 자처하는 에이알비전이 최근 소송에 휩싸였다. 회사 경영난이 가중되자 동업한 임원이 유사한 회사명으로 재창업하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현재 특허권 유용, 비밀유지 협약, 직원 빼돌리기 등이 자행됐는지를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판결이 쉽게 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지난 몇 달 동안 담당 검사만 네 번이나 바뀌는 등 지지부진하다.

음향 전문 기업 이머시스도 연구소장 등이 기술을 갖고 독립하면서 한때 휘청거린 적이 있다. 기업 방향도 음향 제조로 바꿀 만큼 타격도 컸다. 소송이 진행되진 않았지만 최고경영자(CEO)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도 아니었다.

일본 야마하 보컬로이드 기술을 대체할 것으로 주목받던 티젠스도 같은 사례다. 음악용 음성합성 기술로 사용자가 한국어 가사를 입력하면 실제로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노래를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티젠스도 경영진 일부가 기술을 갖고 퇴사해 창업하는 바람에 빛을 못 봤다.

특허 소송으로 12년째 허송세월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폭발방지장치 특허를 보유한 건국산업은 10년 넘게 특허 침해 업체를 찾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는 부탄가스 압력이 위험 수위에 이르면 자동으로 가스 용기를 이탈시켜 불을 꺼 주는 장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2004년 경쟁업체가 특허 무효소송을 내 8년을 싸웠다. 2012년 가까스로 승소했지만 배상액은 1억1000만원이 전부였다. 사업 기회와 정신 고통, 기업 부실화 등으로 인한 피해도 엄청나지만 소송에 들어간 수억원은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우리나라 특허권자의 특허침해 승소율은 25%다. 스위스, 미국, 중국이 각각 85%, 59%, 33%인데 비해 많이 떨어진다. 그만큼 베끼는 것에 대해 법의 잣대가 관대하다는 의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양자 간 이익을 다투는 싸움이다 보니 소송 기간도 길어진다. 여름 장마처럼 지루한 소송전으로 가면 영세업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고사한다.

미국처럼 특허 침해 소송이 발생하면 특허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법원에 제출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침해자가 증거자료를 모두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피해자가 모든 걸 규명해야 한다.

국무총리실이 기술 탈취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운용하기로 했다.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은 전담팀을 꾸릴 방침이다. 모두 업체 보호책이긴 하지만 근본 대책은 아니다. 최근엔 기술 탈취뿐만 아니라 업체 소송 자체를 빠르게 진행시키기 위해 `특급신청` 절차를 만들어 보자는 여론도 있다. 물론 관련 전문가 확보도 시급한 일이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활성화하려면 정부가 나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부터 만들어 줘야 한다.

박희범 전국부 데스크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