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4주년 특집3-流] (32)글로벌 표준 선점하라

글로벌 표준 선점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표준은 국제경쟁력 핵심 인프라일 뿐만 아니라 기업 생사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표준을 선점하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살아남기 어렵다. 기술표준을 선점하면 게임 규칙을 설정하듯 자신에게 익숙하고 유리한 방식을 표준으로 수용할 수 있다. 결국 경쟁사보다 시장에 먼저 진출해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표준화 경쟁은 시장 규모가 클수록, 표준에 의한 기술 지배력이 높아질수록 더욱 치열하다.

SK텔레콤은 지난 8월 미국 최대 통신 사업자 버라이즌과 5세대(5G) 이동통신 표준화와 공동연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로저 거나니 버라이즌 부사장 겸 최고기술전문가(왼쪽)와 최진성 종합기술원장이 MoU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8월 미국 최대 통신 사업자 버라이즌과 5세대(5G) 이동통신 표준화와 공동연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로저 거나니 버라이즌 부사장 겸 최고기술전문가(왼쪽)와 최진성 종합기술원장이 MoU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표준 경쟁 치열

최근 TV 분야에서는 HDR(High Dynamic Range) 규격을 두고 HDR10과 돌비비전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 샤프, 소니 등 TV 제조사 대부분이 HDR10에 참여하고 있다. 돌비비전은 LG전자와 미국 비지오 등이 참여하고 있다. 오픈 플랫폼을 지향하는 HDR10에 참여한 TV 제조사가 돌비비전 참여 기업보다 2배가량 많지만 돌비비전은 돌비라는 회사 마케팅에 힘입어 빠르게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 표준경쟁도 본격화됐다. SK텔레콤은 AT&T, 도이치텔레콤, 차이나모바일, NTT도코모, 보다폰 등 글로벌 주요 이동 통신사 및 에릭슨·노키아·삼성·화웨이·인텔·퀄컴·LG 등 장비업체와 5G 표준화 공동 협력체를 만들기로 했다. 5G협력체는 4G LTE 포함 기존 네트워크 연동, 초기 5G상용화 시스템 규격과 이후 기술 진화 및 업그레이드 등 실제 시스템을 상용화하는데 필요한 규격을 논의한다. 이동통신관련 국제 공식 표준단체인 3GPP(3rd Generation Partnership Project)가 2018년 1차 5G 규격 제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성공적인 상용화와 상용화 이후 중장기 기술료 수입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번 만들어 놓은 국제표준은 상품화로 연결되면 수많은 기업에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당초 투자된 비용의 수백 배 이상 경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국가 브랜드 홍보 등 수치화할 수 없는 부대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각 국가가 국제표준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다.

◇미국·유럽, 세계시장 지배 위해 표준화 추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세계시장 지배전략으로 국제표준화에 두 팔 걷고 나서고 있다. 미국은 자율적인 합의에 기반을 둔 표준(Voluntary Consensus Standard)을 강조하고 있으며, 국가기술이전진흥법(NTTAA)과 표준개발기술진흥법(SDOAA) 등 법률을 기반으로 민간 표준화 활동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장려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공동 연구개발 정책을 통해 연구개발과 표준화 간 연계를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ETSI, CEN, CENELEC 등 유럽 표준화 기구를 중심으로 국가 간 협력을 통해 제정한 유럽표준을 회원국이 수용하고, 이를 다시 ITU, ISO, IEC와 같은 국제표준화기구에 제안하여 국제표준화 추진에 힘쓰고 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무역 80%는 국제표준 영향 아래 이뤄지고 있다. 표준화가 세계 경제 시장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가 경제의 89.8%를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제표준 인증은 국가 생존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국내 기술 국제표준 반영을 통한 표준특허 확보와 세계시장 선점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 지원과 민간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표준 전략 체계화해야

기업의 성공여부는 보유 지식재산권을 어떻게 표준화하고 활용하여 수익을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보유 특허 기술이 산업화로 연결돼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특허, 표준화 전략을 체계화해야 한다. 기업이 기술개발에 성공해도 특허로 보호받지 못하면 산업화를 시도하기 어렵고, 특허를 받아도 표준으로 채택되지 못하면 시장을 확보할 수 없다. 최근에는 세계 곳곳에서 특허침해를 문제 삼아 거액 소송을 낸 뒤 협상을 통해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받아가는 거대 지식재산권회사가 탄생하고 있어 특허와 표준화 전략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세계 각국은 표준을 둘러싼 변화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관련 기관이 유기적인 협조나 조화 노력부족으로 인해 국가표준화 질적 성장은 양적성장에 비례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보기술(IT)산업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국제표준에 기반을 둔 제품 개발을 가속화하고 정부는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적으로 지속적인 국제표준화의 활동이나 전문가 지원과 의장단 진출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국내 표준 세계화를 위해서는 국내 R&D 결과를 국제표준으로 반영시키기 위한 효율적 추진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특히 국가차원의 국제표준화 추진 전략 수립을 위해서는 각 부처의 고유 R&D 업무의 전문성을 고려한 표준화 추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부처 간 유기적 협조와 조정체계 수립이 필요하다.

IT시장은 갈수록 국가 간 산업 국경이 사라지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기술 개발 경쟁 못지않게 미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표준화 전쟁에 국가와 기업역량을 집결해야 한다.

스마트공장·사물인터넷(IoT)표준 경쟁 시작됐다.

표준 선점은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된다. 다른 국가나 기업의 기술이 국제 표준으로 정해지면 다른 나라나 기업이 추진해온 기술은 무용지물이 된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분야도 마찬가지다. 스마트공장과 사물인터넷이 대표적이다. 이 두 분야는 아직 초창기이지만 각 국가와 기업은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스마트 공장은 제조업 부활에 날개를 달아 주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제조업 위기를 돌파할 유일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제조·생산부터 납품·판매에 이르기까지 정보통신기술(ICT)이 적용되는 범위가 방대하고 명확한 개념과 표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제표준화 조직인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공동으로 스마트공장 관련 전략·자문그룹을 신설해 구체적인 표준화 작업을 논의 중이다. 현재는 스마트공장이 갖춰야 할 기본 구성 요소를 지정하는 단계다. 협상장에서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관련 기술을 다수 보유한 독일과 미국이다.

스마트공장 관련 세계 시장 규모는 2012년 1552억달러에서 2018년 2460억달러로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공장 시장이 커짐에 따라 미국, 독일 등 제조업 강국은 스마트공장 기술 표준 선점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가 커넥티드 스마트팩토리 연구개발(R&D) 기술을 기반으로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 미국 등 선진국이 정부 주도 아래 적극 표준 선점을 하려는 측면에서 보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IoT 분야에서는 아직 시장을 압도하는 표준기술이 없다. IoT는 기술 방식이 다른 제품끼리는 데이터를 주고받기 어렵기 때문에 한두 개 기술이 사실상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많은 글로벌 기업이 힘을 합쳐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제너럴일렉트릭(GE), 인텔, 퀄컴 등이 IoT 통신 표준을 만들기 위해 `오픈 커넥티비티 파운데이션(OCF)`을 만들어 힘을 합친 가운데 애플과 구글 등이 업계 표준 자리를 놓고 경합 중이다. 퀄컴이 주도하고 LG전자·샤프 등이 참여한 `올 신 얼라이언스(All Seen alliance)`도 있다.

IoT 기술 특성상 한 기술이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홈 표준기술이 결국 스마트카 표준기술, 스마트시티의 표준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대표적 표준전쟁

19070년대 이전

RCA-CBS:컬러TV

Dvorak-QWERTY:자판 표준

1970년~1980년대

VHS 〃 베타맥스: 비디오 테이프

1990년~2000년대

애플-IBM:컴퓨터 표준 전쟁

USB-IEEE1394: 데이터 인터페이스

블루레이-HD DVD: 고화질 영상매체

HDMI-DP: 디지털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

US로보틱스/쓰리콤-록웰:56K 모뎀

HD TV 표준화 전쟁

넷스케이프-MS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 표준화 전쟁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