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4차 산업혁명, 융합으로 준비하자

[과학산책]4차 산업혁명, 융합으로 준비하자

구글 자율주행 자동차의 시범 운행 거리가 200만마일(약 321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구를 약 80바퀴 돈 셈이다. 구글은 그동안 사고 등을 학습해 완벽하게 자율 주행하는 기술을 개발, 2020년께 양산화한다는 목표다. 구글뿐만 아니라 대부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3년 내 상용화를 겨냥하고 막바지 연구개발(R&D)을 하고 있다. 우버는 이미 9월 14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자율주행 택시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람이 부르면 무인 택시가 달려오고, 옆 차로에서는 인공지능(AI) 드라이버가 질주하는 도로를 상상하니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포럼)은 올해 1월 펴낸 보고서 `미래 일자리`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2020년까지 510만개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포럼 창시자이자 현 회장인 클라우스 슈바프는 4차 산업혁명을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과 바이오산업, 물리학 등 간 경계를 융합하는 기술 혁명”으로 정의, 파괴적 혁신이 전 세계를 강타할 것임을 예고했다.

문제는 이 혁신 속도와 파급력이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미래는 언제나 빨리 다가올 뿐만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는 엘빈 토플러의 말이 지금처럼 실감나게 느껴진 적도 없다.

기계 혁명인 1차 산업혁명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 전기 혁명이라고 할 만한 2차 산업혁명은 대량생산 시대를 촉발시키며 미국을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 자리에 올려놓았다. 3차 디지털 산업혁명은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1차 산업혁명이 유럽 외 지역으로의 전파에 100년 이상 걸린 데 비해 인터넷 확산에는 2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현실이 이런 데도 세계 인구 73억명 가운데 40억명은 아직도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이 국가 간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행히 한국은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제조업과 탄탄한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미 확보하고 있는 두 가지 요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그랜드 디자인이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융합`과 `연결`에 있고, 이러한 초연결 시대에는 자본이나 지식의 양보다 개방, 협력, 연대의 태도가 훨씬 강력한 혁신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분야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지원·육성하고 있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2014년 6월 출범 직후부터 융합 연구 환경 조성에 집중해 왔다. 출연연 간 벽을 허문 융합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관련 생태계를 구축하고 10개 융합 연구단과 20개 융합 클러스터를 운영, 산업계와 국가·사회 현안 해결에 나서고 있다.

융합 연구단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선 정의하고, 이를 풀 수 있는 최적의 드림팀을 뽑아 과제를 맡기는 철저한 상향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또 거리상 떨어져 있는 출연연 연구자들이 한 공간에 모여 융합 연구를 수행하고, 종료 후에는 원 소속 기관으로 복귀하는 온사이트 방식을 도입했다. 한 예로 농업, 정보통신기술(ICT), 원예, 에너지, 생산공학, 식품공학 분야 연구자들이 주관 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모여 스마트팜 상용화를 위한 융합 연구를 수행하는 식이다.

카오스 이론 가운데 창발(創發)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전에 없던 것이 한순간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다. 창발은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바텀업 방식 조직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지금은 무한 연결성 시대다. 연구자들이 자율성과 창의성에 바탕을 두고 수시로 연결 및 연대하는 과정에서 창의 연구 성과가 창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융합`과 `연결`에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sdc6506@n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