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꿈을 안고 가자, 세계로

[미래포럼]꿈을 안고 가자, 세계로

올해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주변의 몇몇 벤처기업 대표에게 “올해 실적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어 보면 대답보다 한숨부터 들려온다. 대답은 듣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다. 국내 시장은 좁고 경쟁자는 많고, 뛰어난 성능으로 차별화를 꾀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금세 비슷한 성능의 제품이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은 가격으로 다투는 일뿐이다. 이른바 제 살 깎기 경쟁에 뛰어들다 보면 흑자 경영은 요원한 이야기가 되고, 그렇게 적자가 쌓여 가면서 기업 경영은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다.

많은 경영자가 이러한 고착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 시장 개척에도 눈을 돌린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쉬워 보이는 시장이 일본인 듯하다.

지리상으로도 가깝고 우리와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많은 부분에서 흡사한 점이 많으며, 세계 제3의 경제 대국이니 시장 규모도 크다. 우리나라 시장보다는 훨씬 매력 있어 보이는 게 당연하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실제로 일본 사회 각 분야의 정보화는 여러 이유로 인해 한국과 비교해 상당히 늦게 진행된다. 한국 정보화 시장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해 보겠다는 견해에는 동의한다. 앞으로도 기회는 계속 올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2000년 이후 수많은 기업이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현지 파트너를 확보하거나 직접 수출에 성공,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회사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뒤돌아보면 한국 정보기술(IT) 기업 가운데 대기업·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일본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회사는 네이버 일본 자회사인 라인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 솔루션이 일본 시장 내에서 경쟁력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우리 기업의 제품 대부분은 충분한 가격 경쟁력과 뛰어난 성능을 보유하고 있어서 논리상으로는 승산이 충분하다고 본다.

참고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는 1997년 일본 현지 법인을 설립한 이래 일본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정보화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전자정부, 의료정보화, 교육정보화, 건축정보화 등에 주안점을 두고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근자에는 일본 시스템통합(SI) 기업을 대상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관련 컨설팅도 수행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국 기업의 솔루션 경쟁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연유로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시장 공략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얼마 전에 서점에서 라인의 일본 시장 성공을 다룬 책자를 발견, 다시 한 번 성공에 대해 분석했다. 그 내용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의 일본 진출 전략에 커다란 결함이 있음을 발견했다.

라인이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 요인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로 한국의 시즈(솔루션 또는 비즈니스 모델)가 있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유능한 일본인 경영자 및 기술자가 그 제품을 일본에 맞게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세 번째는 라인이라는 회사 또는 라인이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이 한국 기술로 시작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사용하는 일본인이 태반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껏 진행해 온 일본 진출과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 보자. 당연히 한국 기업 솔루션으로 일본에 진출하게 되니 우선 한국의 시즈는 일본 시장에서 통용될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이유인 라인을 이끌어 가는 경영자부터 영업 및 개발에 이르기까지 유능한 일본 직원이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유능하다는 말을 객관화해서 정의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사회 통념상 이야기하는 유능한 젊은 기술자 기준으로 보면 일류 대학 출신이거나 일류 기업 출신이면서 젊은 인재를 칭하는 것으로 보면 큰 무리가 없다.

보수 성격이 무척 강한 일본에서 한국 기업이 유능한 일본인 인재를 채용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대체로 일본인은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 등에 취직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일본 명문대 출신의 잘나가는 젊은이들이 만든 회사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 기업도 아닌, 냉정하게 일본보다는 후진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기업에 취직할 유능한 일본인은 드물다.

일본에 진출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그럼에도 고액의 인재 모집 비용을 들여서 유능한 인재를 모집하려 한다. 그러나 원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직원 채용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 라인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후소사가 출판한 `한류경영 라인`이라는 책에 따르면 네이버도 일본 사업에 실패하고 철수를 고려할 무렵에 때마침 일본의 유명한 인터넷 벤처기업 라이브도어가 분식회계 등으로 경영자가 구속되는 등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됐다. 네이버는 그 회사를 인수, 경영자 및 개발자 등 일본에서 일류로 평가받는 유능한 인재도 함께 확보하게 됐다.

세 번째로 라인이 일본 회사로 알고 있는 일본 소비자가 많다는 이야기다. 정말로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일본 내에는 코리아 리스크가 존재한다. 한·일 관계의 부침에도 많은 영향을 받긴 하지만 일본 소비자는 아직도 한국 제품을 일본 제품 카피로밖에는 보지 않으며,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도 일본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조금은 있는 것과 같다.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삼성 갤럭시나 현대자동차도 일본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철수한 이유도 일본 제품에 비해 제품이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때문이 아니다.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한국 제품에 대한 인식, 즉 코리아 리스크를 불식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일본 제품은 품질이 좋고 한국 제품은 품질이 나쁘기 때문이라는 자학 어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일본 현직 공무원으로서, 발주자로서 10여년 동안 일본 IT 기업을 상대해 본 경험으로는 적어도 소프트웨어(SW) 부문에서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의 품질 수준은 대동소이하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아니 우리나라 제품이 더욱 우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본 소비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홍수환이나 유제두 같은 권투 선수들이 활약하던 시절에 우리나라 선수가 세계챔피언전을 어웨이 경기로 치를 때 분명히 경기 내용으로는 이긴 것 같은데 뚜껑을 열었을 때 판정패 당하는 모습을 보며 분개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와 같은 논리라고 생각하면 일본인들의 한국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우리가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적어도 일본 제품을 뛰어넘는 압도하는 성능과 이미지 전략이 필요하다.

그럼 중소기업이 일본 진출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왕도는 없다. 섣불리 일본 진출을 추진하기보다는 일본 진출 장기 전략을 수립, 주도면밀한 일본 시장 연구를 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구하는 노력 또는 자체 육성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정부도 벤처기업의 일본 진출을 지원할 때 눈앞의 성과를 전제로 하기보다 거시 안목으로 일본 시장을 분석,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유능한 인재를 구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최근 들어 일본 IT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보면 경영 상태가 내용 면에서 악화돼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지털혁명 바람이 세계를 휘몰아치는 이 시점에서도 일본 IT 기업의 주 수입 모델은 사실상 인력 파견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경제가 침체되고 시장 규모가 축소돼 가는 상황에서 정보화 분야도 점차 수요가 줄어든다. 가격 경쟁까지 심화되면서 더 이상 이제까지 비즈니스 모델에 의지해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산성 향상 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이러한 경우 우리 시즈는 이들에게 훌륭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리되면 비로소 한국과 일본 기업은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 윈윈 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이사 yomutaku@e-corporation.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