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지구물리량 데이터와 측정 표준

[과학산책]지구물리량 데이터와 측정 표준

우리는 공기를 마시고, 햇빛을 쬐고, 별과 달을 보고, 계절의 변화 등을 느낄 수 있는 지구 물리 환경 속에서 살아 가고 있다. 지구 환경은 지구 내부, 태양과 우주 등이 균형된 상호 작용에 의해 유지된다. 만일 균형이 조금이라도 깨진다면 급격한 기후 변동, 지진, 해수면 상승 등이 발생해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줄 것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런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러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물리 환경을 정밀하게 측정·분석하고 예측,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국제학술연합회의(ICSU)의 국제지구물리관측년(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 위원회가 중심이 돼 1957년부터 전 세계 규모로 정밀한 지구 물리 환경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관측 대상은 경위도 측정, 중력, 지진파, 지구 자기, 해양, 기상, 빙하, 태양 활동, 남극 등 다양하다. 인공위성과 지상관측소의 측정 자료를 활용해 많은 국가가 참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 업적으로는 지구 자기장, 전리층의 교란과 오로라, 태평양에서의 구로시오 해류, 남극대륙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지구 물리 환경에 대한 국제 연구 추세에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지구 물리량 측정에 소홀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지구 자기장의 경우 측정 역사는 40여년이 되지만 정확한 데이터 및 분석 기술 부족으로 국제 수준의 지구 자기장 데이터를 측정하지 못했다. 최근에 이르러 기상청은 충남 청양에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지구자기장 관측 시설을 갖추고 데이터 측정 및 분석 기술을 연속 확보, 국제 공인 조직인 국제실시간자기관측소연대(INTERMAGNET, 인터마그네트)에 가입했다. 이로써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한반도 지구 자기장의 기준 값을 지속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국내에서도 국제 수준의 장비를 보유했고, 오랜 기간 지구 자기장을 측정해 왔지만 인터마그네트에 가입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 고품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요구되는 지구 자기장의 측정 정확도는 지구 자기장 크기인 약 50〃T(마이크로테슬라)의 백만분의 1 수준인 0.1nT(나노테슬라)이다. 이와 같이 미세한 자기장을 측정 장비가 제대로 측정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이미 2000년부터 분해능 0.01nT의 직류 자기장 측정 표준을 개발해 유지하고 있으며, 국제 표준기관과의 국제 비교를 통해 자기장 표준의 품질과 국제 기준의 동등성을 유지하고 있다. 기상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양 지구자기장 관측소는 관측기기와 국가 자기장 표준이 연계되도록 해서 측정값의 신뢰성과 국제 기준 동등성을 확보하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기준 관측소로 자리매김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지구 물리량 자료를 국가기관에서 측정해 보급하고 있으며, 측정·분석 기술을 상호 공유할 수 있는 제도가 잘돼 있다. 우리나라는 지구 물리 환경 측정을 위한 시스템은 많이 갖추고 있지만 이를 정밀 측정하고 분석할 능력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관측 자료를 측정 표준과 연계시킴으로써 더욱 정밀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측정 표준은 단순한 측정 장비의 교정뿐만 아니라 물리량을 좀 더 정확하게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는 측정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구 물리 환경 측정 연구는 경제 규모에 비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지구 물리 환경 측정 자료를 국제간에 공유, 여러 현상 연구에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경제 규모에 걸맞게 지구 물리 환경 분야의 물리량 측정을 위한 연구가 적극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반도 물리 환경을 더욱 정밀하게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의 확보는 물론 고품질 자료를 국제사회에 공급, 우리나라의 국제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박포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기자기센터 책임연구원, pgpark@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