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인공지능 연구, 굳건한 신념으로 추진하라

김진형 초대 지능정보기술연구원장 내정자
김진형 초대 지능정보기술연구원장 내정자

대한민국은 우울하다. 정유년 새해가 됐지만 희망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안팎에서 우환이 겹친다. 무책임, 거짓, 불신으로 공동체는 파편화되고 있다. 언제나 세상이 바로잡히고 제 길로 나아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 이 혼란이 정리되려나?

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소식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경쟁국이라고 생각해 온 중국의 약진이 무섭다. 참여 업체 가운데 3분의 1이 중국 기업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등 첨단 분야에서도 개최국인 미국과 당당히 겨루고 있다. 이 행사에 중국은 손님이 아니라 주인공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 대표, 정치인, 관료들이 참관했으니 크게 느끼고 돌아왔기를 바란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은 변화의 깊이, 폭, 속도에서 그전의 것과 많이 다르다. 이 변화의 핵심 기술은 AI다. AI는 사람의 지능을 흉내 내는 소프트웨어(SW) 기술이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AI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적극 확산, 여러 산업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AI 경제 효과는 미국의 경우 2035년 8500조원, 우리나라는 2030년 460조원을 각각 예상한다.

AI는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및 개인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일자리는 급격히 감소된다. 단순 노동은 물론 고도의 지식 능력이 필요한 업무까지도 자동화된다. 고용 형태도 급변한다. 양극화가 심화돼 사회 갈등 요소도 증대한다. 사회안전망 확충과 새로운 능력을 갖추기 위해 교육 내용과 방법의 적극 혁신이 필요하다. 고용 형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동 시장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

여러 나라에서 AI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 국가 차원에서 연구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 2년 동안 17조원을 투자한다고 한다. 중국은 멀리 보는 인력 양성 장기 정책으로 유명하다. 기존의 정보기술(IT)학과에다 지난 2000년부터 입학 정원 500명의 SW대학 37개를 추가 설립, 연 2만명의 신규 SW 고급 인력이 전국에 공급되고 있다. 이렇게 양성한 인재들이 요즘 창업 열풍을 이끌고 있으며, 하루 1만3000개 창업이 일어난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2000년에는 120명이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정원이 이제 56명으로 줄었다.

중국의 최근 도약은 이런 통 큰 장기 투자 덕분일 것이다. AI에 신념을 두고 투자하는 중국 정부를 보면서 부러움을 많이 느낀다. 중국의 의사결정자들은 어떻게 이런 기술 분별력과 신념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우리도 AI 기술 개발과 확산을 국가 어젠다로 설정,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20년 전 인터넷 중심 전략으로 IT 강국을 이루고 3만달러 국민소득을 이끌던 성공 사례를 다시 한 번 재현했으면 한다. 새로운 AI 회사들이 생겨나서 기존 회사들과 공정 경쟁을 하면 혁신이 혁신을 낳는 사회를 꿈꿀 수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역동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보자.

다행스럽게도 AI가 무엇인지는 우리 국민이 잘 알고 있다. 알파고 덕분이다. AI 투자에 이미 국민의 합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알파고 충격은 우리에게 오히려 행운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중장기 지능정보사회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지능정보 기술 개발은 물론 전 산업의 지능정보화 촉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세계 수준의 지능정보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국가의 근간 서비스에 선제 활용해 전 산업의 지능정보화를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연구비 투자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AI에 대한 국가 연구비 규모에서 우리 정부와 국회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AI 연구 사업은 연 500억원 규모의 국가 전략 과제로 기획됐다. 그러나 이 국책 과제 예산 신청은 기업들이 힘을 모아 AI 연구원인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을 설립했음에도 국회에서 80억원으로 삭감됨으로써 봉쇄됐다. 우리 국회와 정부는 아직도 AI의 가치와 시급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AI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고 확산은 눈부신 상황이다. 이제 알파고의 실력은 더 이상 사람이 이길 수 없는 수준으로 향상됐다. 이세돌 기사가 한 판이나마 알파고를 이긴 마지막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1년을 허송했다.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능정보 사회 추진에는 깊은 철학이 필요하다. 미국은 `기업과 근로자의 창의력 발휘`에 집중한다. 우리는 어떤 철학으로 준비해야 할까. 이 정부도 저물어 가고 있다. 새 정부에서 지능정보 사회 대책을 기술 분별력과 신념으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김진형 AIRI 원장·KAIST 명예교수 profj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