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핫이슈]서류에 짓눌린 `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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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행정부담이 과도하다.”

연구자들이 정부 공무원을 만나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지난 2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참여한 `제4회 현미경` 회의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행정부담과 관련해선 일각에서 “또 그 이야기냐”고 말할 수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다양한 연구개발(R&D) 규제개혁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현장에서 체감도는 낮다. 행정 부담을 없앤다고 해도 `현장 착근`이 안돼 처리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다.

정책학자들은 국가 R&D는 정부 재정 투입으로 과학자의 연구 자율성보다 엄격한 윤리와 투명성이 강조되는 때가 있기 때문에 규제 성격을 갖는다고 본다. 하지만 현행 제도와 규정은 과학자의 자율과 창의보다는 `관리자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비판도 비등한다. 엄격한 규제는 연구자 사기와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연구자, 해외보다 행정에 시간 더 쏟아…“연구는 언제하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최근 `대학 연구자의 행정부담 측정과 정책적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대학연구자는 가장 창의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할 조직이지만 과제수주나 보고서 제출에만 치중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대학연구자는 논문양산으로만 평가받는 경우가 많고 중장기 연구 여건이 미흡해 창의적 결과물을 내기보다 생계형 연구를 진행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연구책임자들은 해외 연구자보다 연구과제 수주와 관련된 행정과 연구비 관리 등에 있어 더 높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FDP(Federal Demonstration Partnership) 대학교수들은 2012년 기준 업무시간의 50.2%를 연구관련 행정업무에 소요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게 악화된 수치다. 2005년에는 업무시간의 41.9%를 연구관련 행정업무에 썼는데 복잡해지는 절차로 행정업무가 늘어나게 됐다.

한국은 연구관련 행정업무에 쏟는 시간이 이보다도 훨씬 높은 62.7%를 차지하며 연구에 몰입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나타났다. 한국 연구자들은 R&D 관련행정에 39.2%나 업무시간을 배분하고 있는데 그 중 사업공고 조사, 사업신청, 평가 선정 등 사업수주와 관련된 비율이 23%나 됐다.

미국과 한국의 연구 업무시간 배분현황 (출처:KISTEP)
<미국과 한국의 연구 업무시간 배분현황 (출처:KISTEP)>

◇관리→지원 중심으로 바뀌어야

과학기술 규제는 `진흥`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관리중심`에서 `지원중심`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국가 R&D는 공통적으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다. 주요 R&D 관련 17개 부처·청별로 국가R&D사업 관리 세부 규정이 존재하지만 부처 간 다른 규제로 혼란방지를 위해 공동관리 규정을 표준화했다.

보고서는 이 공동관리 규정을 경제·사회·행정적 규제로 세분화해 검토하면 약 32개의 규제가 있다고 파악했다. 여기서 발견된 32개 중 행정 규제가 27개로 다수를 차지하는데 주로 절차준수 및 보고에 관한 사항이 많다. 보고서는 “자료제출, 보고 등에 관한 형식요건, 절차준행이 상당수로 행정절차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R&D 혁신방안, 정부R&D 연구비 관리규정 통일방안 등 지속적인 R&D 제도 간소화와 연구몰입도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정부는 현장 착근이 이뤄질 때까지 제도를 확대 추진할 필요가 있다. 출연연 관계자는 “제도가 2016년에 바뀌면 그 이전에 수주한 과제들은 수주 당시 기준을 적용받아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줄어들지 않는다”면서 “2016년 기준을 적용받도록 현장착근이 되려면 적어도 2~3년이 지나야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지원 인력 늘려야

행정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전문 과학기술 지원 인력을 확대 노력도 필요하다. 보고서는 “대학 연구조직 지원인력을 일률적 정원으로 관리하기보다 총액인건비 내 자율성을 보장하는 등 유연한 지원인력의 고용을 통해 대학 내 지원인력 확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독일 MPI 슈투트가르트는 연구자 대비 지원인력의 비율이 3대 7에 가깝다. 연구지원을 위해 다양한 파트타임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3억 이상 대규모 과제에서 행정지원인력 고용이 상대적으로 다수 이뤄지지만 지원이 불충분하다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현미경 회의에서도 이수재 한양대 산학협력단 부단장은 “대학 행정원이 부족해 연구하는 학생에게 행정업무를 시킬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조일연 ETRI SW기반기술연구본부장은 “과제마다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는 연구비가 5000만원이든, 100억이든 비슷하지만 큰 과제는 지원받고 작은 과제는 지원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국내는 연구지원 인력이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고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연구자 행정부담 경감을 위한 전문성을 기르기 쉽지 않은 실정이기도 하다. 해당 인력 전문성 교육과 조직별로 직무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세분화 하는 등 대학 노력도 필요하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