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늘공`의 책무

[데스크라인]`늘공`의 책무

탄핵 정국이 막바지에 들어섰다. `정권 시계`가 있다면 몇 시쯤 됐을까. 밤 11시30분을 지났을까. 새날을 알리는 자정이 멀지 않았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도 늦은 시간, 정리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가장 무기력한 곳이 공직 사회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된 정부 부처는 쑥대밭이 됐다. 특검에 불려 다니느라 일손을 놓았다. 조기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6월이면 끝”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공무원도 많다. 이렇게 정부 조직이 형해화한 적이 없다. 레임덕보다 더 심각하다.

몸 사리기는 `어공`이나 `늘공`이나 매한가지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별정직 공무원은 어차피 정권이 바뀌면 옷을 벗을 터다. 직업 공무원인 `늘 공무원`도 정부 조직 개편 이슈로 마음이 붕 떠 있다. 현직이 유지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보니 열심히 일할 이유를 못 찾는다. 자칫 오해를 살 만한 정책 결정은 뒤로 미룬다. 새로운 정책보다 이미 나온 내용을 짜깁기해 내놓는다.

문제는 `무기력 공화국`이 최소한 1년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반기에 새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새 조직 안착에는 6개월이 걸린다. 어영부영 6개월, 좌충우돌 6개월을 보내면 2017년이 그냥 지나간다. 올해는 4차 산업혁명이 급진전되는 해다. 지난달 미국 CES 2017에서 목격했다. 세계 각국이 질주하는데 주저앉아 있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공직 사회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다. 한때 영혼이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돌았지만 결국 국가 비전과 정책을 만든 이는 공무원이다. 시한부인 `어공`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직업 공무원인 `늘공`은 책무를 느껴야 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승객을 위해 찬송가를 연주하던 악사들을 떠올려 보자.

지금이 정책 개발 최적기일 수도 있다. 평상시에 시간이 없어 손대지 못한 해묵은 현안 연구에 올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 연구개발(R&D) 혁신 방안`과 같은 난제를 풀어 볼 수 있다. R&D 혁신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시됐다. 그러나 타이밍이 늦어 번번이 실패했다. 정권 출범 후 정책 개발을 시작하다 보니 힘이 빠진 정권 중반기에 혁신안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부터 연구를 시작하면 새 정부 출범 이후 힘이 있을 때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힘 있는 실·국장급 간부의 의지와 배려가 필요하다. 주요 보직 과장을 중심으로 정책 개발에 힘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보신주의보다 미래에 투자하는 솔선 간부가 많아져야 한다.

차기 정부의 신상필벌도 중요하다. 지금 열심히 일해도 정권이 바뀌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정서가 무기력 공화국을 부추기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복지부동이 결국 차기 정부의 초반 무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유력 대선 주자들이 엄정한 평가에 힘을 실어 주면 좋겠다. 대혼돈 시기에 더 열심히 일한 공무원을 요직에 발탁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어수선한 가운데 `타이타닉 악사`처럼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는 `어공`도 여럿 있다. 어공은 곧 떠나겠지만 늘공은 다르다. 끊임없이 정책과 업무로 승부해야 한다. 늘공이 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사명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