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4차 산업혁명 이끌 부처 탄생을 기대한다

뤼크 베송 감독의 공상과학(SF) 영화 `제5원소`에는 팔 한쪽만 남은 외계인을 복구해 내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3D 프린터로 조형물을 찍어 내듯 남아 있는 팔에 사라진 신체를 이어 붙인다. 팔에서 확보한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뼈와 근육에서부터 신경과 혈관 등 신체를 이루는 모든 요소를 재생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영화의 시점은 2259년. 지금으로부터 242년 뒤의 일이다. 영화 제작 시기가 20년 전인 1997년이니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262년 뒤 미래를 상상으로 그려 본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모습과 많은 부분에서 오버랩 된다. 영화에 나오는 기계는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AI)과 정교한 로봇 기술을 융합, DNA를 정교하게 배열해 나가는 최첨단 3D 생체 프린터인 셈이다.

또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서 신체를 재구성한다는 콘셉트는 줄기세포에서 신체 기관을 분화시키려는 생명공학의 최종 목표와 다르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은 바로 AI와 빅데이터, 로봇기술, 생명과학, 초고속 네트워크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사물의 지능화와 초연결을 지향한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SF를 현실로 구현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도 이를 위한 연구는 이미 시작됐다.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등 일부 분야에서는 적지 않은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올해부터 2022년까지 6년 동안 360억원을 투입해 초연결인프라, 초지능정보사회, 초실감서비스 구현을 위한 11개 핵심 원천 기술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ETRI는 4차 산업혁명 준비로 `디지털지식화(IDX)` 전략을 마련해 왔다. 제조·서비스업 혁신을 넘어 글로벌 경제, 사회, 문화, 고용, 노동 시스템 전반의 변혁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사회 시스템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도 정립했다.

이번 발표는 그동안 준비한 계획을 구체화하겠다는 선언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어딘지 허전하다. IDX 전략에서 추구한 국가·사회 시스템 구축을 위한 계획은 전혀 담아 내지 못한 채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핵심 기술을 몇 가지 개발하겠다는 데 그친 느낌이다.

사실 국가·사회 시스템 전체를 기획하거나 운영하는 일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다행히 정치권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올랐다. 대통령 선거 주자들이 모두 4차 산업혁명을 핵심 어젠다로 삼았다. 저마다 방법은 달리 제시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장기 침체에 빠진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모양새다.

국내에는 순도 높은 빅데이터가 넘쳐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한 곳에 모아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지금 당장 현실화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에서 그려진 장면도 240여년 뒤가 아니라 적어도 20~30년 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과학 기술과 ICT 분야를 둘러싼 정부 거버넌스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이참에 정보기술(IT) 강국 코리아의 저력을 살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힘 있는 부처 탄생을 기대해 본다.

대전=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