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국민안전'과 '시장선점' 동시에 버릴 것인가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의 최우선 목표는 국민 안전이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비롯해 지난해 경주 지진 당시 통신망 마비로 인한 혼란을 감안하면 재난 대비 독자 통신망은 필요하다. 통신사업자와 중소기업이 개발한 공공안전 LTE(PS-LTE) 관련 산업의 육성 기회도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의 의사결정 지연에 이 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에이엠텔레콤이 재난망 시범사업에 공급할 무전기형 단말 'AP600'.
에이엠텔레콤이 재난망 시범사업에 공급할 무전기형 단말 'AP600'.

◇4월엔 무조건 발주해야

국민안전처가 올해 예정한 1단계 사업(강원·충북·충남·대전·세종)을 강원도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강원 지역 경찰과 소방, 지방자치단체, 행사 운영 요원이 PS-LTE 기반의 재난망을 사용하도록 할 예정이다. 정부와 통신사는 시연 공간을 마련, 홍보할 계획이다.

통신사 관계자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행사 관계자가 PS-LTE 기술을 문의하고, 원전 시설 등 안전이 필수인 해외 기관에서도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가 4월에는 총사업비와 관련해 결론을 내려야만 올림픽 개막 한 달 전인 내년 1월에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 경찰과 행사 요원 등 실제 사용자가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기까지 최소 두 달 정도가 필요하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의미다.

SK텔레콤 직원이 재난망을 시험하고 있다.
SK텔레콤 직원이 재난망을 시험하고 있다.

◇정부 결론은 하세월

기재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재난망 총사업비·추진방안 용역을 의뢰한 4개월이 지났다. 언제, 어떤 결론이 날 지 시계 제로다. 일각에선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재난망 사용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대규모 투자 사업 추진에 거부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재난망은 과거에도 정부의 의사 결정 지연으로 늦어졌다. 14년 표류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재난망포럼 관계자는 “총사업비, 경제성을 거론하는 데 전문가들이 충분히 검증했다. '국민의 생명을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니냐”면서 “추진 여부를 하루빨리 결론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KT가 재난안전에 쓰이는 드론을 소개하고 있다.
KT가 재난안전에 쓰이는 드론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PS-LTE 선도

PS-LTE는 공공 안전을 위해 사용되는 롱텀에벌루션(LTE) 기술이다. 일반 LTE 통신을 재난망에 맞춰 개선했다. 국제표준화단체 3GPP는 지난해 3월 표준규격 개발 단계의 하나인 릴리즈13을 완료, PS-LTE 표준을 제정했다.

미션크리티컬푸시투토크(MCPTT), 다중동영상전송서비스(eMBMS) 기반의 대용량 그룹통신(GCSE), 직접통화(D2D), 완벽한 폐쇄 보안망, 단독기지국 등이 PS-LTE 대표 기술이다. 이 가운데 MCPTT, eMBMS 기반의 GCSE는 우리 기업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배낭형 기지국과 재난망용 드론 등 참신한 기술도 여럿이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는 2015년 재난망 기술로 LTE를 결정, 세계에서 처음으로 PS-LTE 전국망 구축을 선언했다. 지금까지 기술 개발을 선도해 왔지만 앞으로가 중요하다. 미국, 유럽, 중동, 중국이 재난망 사업을 추진한다. 산업 성장을 위한 정부 지원이 필수다.

단말 업체 임원은 “3년 동안 재난망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인건비 등으로 1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면서 “평창 올림픽을 통해 해외 진출도 기대했는데 사업이 지연되면서 손실이 늘어나 사업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맞춰 1단계 사업을 착수한다면 2·3단계 사업도 연이어 추진될 동력을 얻는다. 그러나 '평창'이라는 목표를 잃게 되면 재난망 사업 전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