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인공지능(AI)과 동거하기

[데스크라인]인공지능(AI)과 동거하기

1997년 체스 그랜드마스터인 가리 카스파로프는 고민에 빠졌다. IBM이 만든 딥블루라는 기계와 벌인 경기에서 완패했기 때문이다. 묘안을 찾아낸다. 딥블루의 강점은 막강한 데이터베이스(DB)다. 체스 수를 모두 담은 DB에 자신도 즉시 접근하면 어떨까. 곧바로 인간 더하기 기계의 대국이라는 개념을 실현시켰다. '프라스타일'로 불리는 체스 경기다. 대국자는 원하는 모든 기술을 쓴다. 기계의 도움 없이 홀로 둘 수 있다. 영리한 체스 컴퓨터의 판단에 따라 말만 움직여도 상관없다. 인간·인공지능(AI)이 한 팀을 구성할 수도 있다. 현존하는 최고 체스 대국자는 '인터그랜드'다. 사람 서너 명과 체스 프로그램 서너 개로 구성된 팀이다.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다음 달 중국을 찾는다. 중국 바둑의 일인자 커제 9단과 맞붙는다. 구글은 알파고 개선 작업을 지속했다. 중국에서 등판할 알파고는 업그레이드판 '알파고 2.0'이다. 바둑계와 애호가들은 경기를 예측하며 술렁인다. 또다시 AI에 패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구글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알파고는 기사들이 창의적 전략을 개발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프로·아마추어 기사가 알파고의 혁신적인 수를 자세히 살펴보고 바둑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

옳은 말이다. 분명 AI는 사람이 체스나 바둑을 더 잘 두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더 나은 조종사, 의사, 판사, 교사가 되도록 돕지 못할 이유도 없다.

왓슨은 국내 병원에 도입돼 진료를 보조한다. 수많은 논문과 자료를 쉽게 찾고 정리한다. 치료 부작용과 알려지지 않은 질병과 유전자 관계 정보를 의사에게 제공한다. 구글은 알파고를 의학에 적용하려 한다. 구글의 딥마인드 홈페이지는 알파고가 임상의사 보조자로서 의학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래 의료는 왓슨, 알파고와 같은 AI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의사는 근거의학을 통해 결론을 내린다. 환자로부터 얻거나 논문에서 찾은 수많은 데이터로 고민한다. 이때 AI는 한계를 없애 줄 좋은 친구가 된다.

문제는 강한 AI다. 미래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강한 AI를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특이점은 기술 발전이 이어져서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기점을 뜻한다.

강한 AI로 구별 짓는 대표적 요소는 '지능'이다. 이를 가졌는지 여부다. 지능은 우리의 독특한 자기 인식 방법이다. 온갖 양상으로 되풀이되는 자기 반성과 혼란스런 자의식의 흐름이다.

우리는 자율주행자동차가 비인간적으로 도로에 집중하기를 원한다. 끼어든 차에다 화를 내기를 원치 않는다. 병원의 왓슨 박사가 일에 몰두하는 대신 전공 선택을 잘못한 것 아닐까 하고 고민해선 안 될 일이다.

AI에 바라는 것은 의식하는 지능이 아닌 인공적 영리함이다. 인간이 시킨 일을 더 잘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미처 생각지 못한 복잡한 사안을 정리해 주는 것도 괜찮다.

다행히 자의식을 갖는 강한 AI의 등장은 가까운 미래에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까지 뇌과학 수준은 쥐의 뇌 구조를 일부 재현하는 정도다. 1000억개가 넘는 인간 뇌신경의 연구는 겨우 시작 단계다.

좋든 싫든 AI와의 동거는 시작됐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AI가 우리 일을 떠맡도록 하자. 우리를 돕는다면 최선이다. 우리는 더 중요한 새로운 일을 꿈꾸자.

윤대원 SW콘텐츠부 데스크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