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노믹스]<칼럼>"美특허소송 고의침해 요건 완화 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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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침해소송 판결로 미국의 고의 특허침해에 의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특허침해사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은 한국 특허법에 없는 개념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일반적 의미는 민사소송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를 품고 비난 받아 마땅한 무분별한 불법 행위를 한 경우 징벌 목적으로 가해자에게 실제 손해액을 훨씬 넘어선 금액을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이를 특허침해사건 손해배상에 접목해 운영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자료: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연방대법원/ 자료: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특허법에 따르면 법원은 특허침해소송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 산정된 손해액 3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중된 배상액을 부과할 수 있다. 이에 근거해 미국 법원은 고의로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되는 특허침해자에게 징벌 목적으로 가중된 손해배상액을 부과해왔다. 즉 특허침해자가 고의로 침해했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쟁점이었다.

2007년 이전에는 고의 특허침해가 쟁점이 되는 경우 특허침해자는 적정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Affirmative Duty of Care)를 다했다는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고의 침해가 아니라는 반론을 펴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반론 증거로 흔히 사용한 자료는 법률 의견서(Advice of Counsel)다. 특허침해자가 침해 행위를 시작하기 전에 특허 법률 조언가로부터 특허침해자 행위가 침해가 아니라는 의견이나 쟁점 특허가 무효 또는 집행불가능이라는 조언을 받았고, 이러한 법률가 조언을 선의로 믿고 침해한 경우는 고의 침해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2007년 시게이트 판례, 2단계 고의성 테스트 제시

그러나 2007년에 시게이트(In re Seagate) 판례를 통해 이러한 '특허침해자의 적정한 주의 의무'가 부정됐다. 대신 특허침해 고의성을 평가하는 2단계 테스트가 새롭게 제시됐다. 시게이트 테스트의 1단계는 객관적인 부주의(Objective Recklessness) 요건으로, 특허침해자가 그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유효한 특허를 침해할 가능성이 큰 행위이었음에도 침해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2단계는 주관적 인식(Subjective Knowledge) 요건으로 특허침해자가 침해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2가지 요건을 증명할 책임은 특허침해 고의성을 주장하는 특허권자가 부담했는데, 특허권자는 명백하고 확신할만한 증거(Clear and Convincing Evidence)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야 했다.

이 판례 후 특허권자가 시게이트 테스트 1단계인 객관적인 부주의 요건을 증명하려 할 경우 특허침해자는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쟁점 특허 비침해 또는 무효 근거를 방어수단으로 종종 사용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쟁점 특허 비침해 또는 무효 근거가 전혀 없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또한 특허침해자의 반박 주장이 꼭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특허침해자가 자신의 행위가 비침해라고 믿었거나 쟁점 특허가 무효 가능성이 있다고 합리적으로 믿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특허권자가 객관적 부주의 요건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테스트 2단계인 주관적인 인식 입증 단계까지 이르지 못한 채 특허 고의침해가 인정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연방대법원, 2016년 완화된 고의침해 기준 제시

그러나 특허권자에게 다소 엄격한 기준을 요구했던 시게이트의 특허침해 고의성을 평가하는 2단계 테스트는 2016년 6월 13일 할로(Halo Electronics)-펄스(Pulse Electronics) 및 스트라이커(Stryker)-짐머(Zimmer) 대법원 판결로 폐지됐다. 이 사건들에서 미국 대법원은 특허를 주관적으로 고의성을 가지고 침해했다고 판단된다면 침해 행위가 객관적으로 부주의한지 여부와 상관없이 가중된 배상액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특허침해자 과실 여부는 침해 행위 당시 특허침해자 인식을 근거로 판단해야 하므로 지방법원은 각 사건의 특정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더욱이 미국특허법(35 U.S.C. §284)이 지방 법원에 특허 침해자에게 가중된 손해배상액을 부과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했다는 점을 들면서 지방법원이 특허법 적용·해석과 관련해 오랜 기간 발달된 건전한 법리에 따라 재량권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에 사용할 수 있는 지방법원 재량을 넓게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가중된 손해배상액은 일반적으로 고의 위법 행위로 전형적인 극악한 사건에 적용된다는 기본 입장은 재확인했다.

또한 할로 및 스트라이커 사건에서 미국 대법원은 시게이트 테스트 판단 기준은 특허권자에게 과도하게 높은 증명 책임을 부여하고 있어 특허침해자가 고의로 침해했다고 해도 특허권자가 특허침해자의 객관적 부주의 등을 입증하지 못하면 특허침해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회피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존 특허권자의 증명 책임 정도를 기존의 “명백하고 확신할만한 증거”(Clear and Convincing Evidence)에서 “우세한 증거”(Preponderance of Evidence)로 낮췄다. 우세한 증거 기준은 어느 한쪽이 주장하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다른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하면 전자의 사실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특허권자 입장에서는 증명책임 부담을 한결 덜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할로 및 스트라이커 판결에서 다소 엄격했던 기존 시게이트의 특허침해 고의성 평가 기준을 폐지했고 증명 책임 수준도 낮췄다. 또 지방법원의 징벌적 손해배상 재량권도 넓게 인정하고 있어 향후 특허침해소송에 여러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즉 고의 침해를 주장하는 특허권자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유리해진 반면, 피고 입장에서는 다소 어려워진 소송 환경에 처하게 됐다. 할로 및 스트라이커 판결 직후 미국 법원에서 특허 고의 침해가 없다고 인정한 약식판결 숫자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고, 연방순회항소법원에서 지방법원의 증액 손해배상 판단 결정 부분을 다시 판단하라고 돌려보낸 사례가 나타나는 등 변화 조짐이 보인다.

◇美진출 기업, 미리 준비를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법원은 특허침해자 과실을 판단하기 위해 침해 당시 특허침해자 인식을 판단하며, 개별 특정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특허침해소송에 피고로 연루되는 경우 고의가 없었음을 보이기 위한 각종 증거를 보다 폭넓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적절한 디스커버리(증거개시) 대응 전략이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고의 특허침해 판단 기준이 완화되면서 징벌적 손해배상 부담이 증가했으므로, 합의(협상)에서도 신중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또 지방법원 재량이 폭넓게 인정되면서 소송이 진행될 지방법원 판사 성향이나 판결 이력 정보를 입수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둔 기업은 제품 개발 과정에서 철저한 특허 분석 및 회피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만약에 대비해 주관적 고의성이 없었다고 보일 수 있는 법률의견서 등을 입수하거나, 제품 출시 전 전문 법률 조언가 또는 기관과의 상담을 통해 차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를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세 내용은 IP노믹스 홈페이지(www.ipnomics.co.kr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특허지원센터 lawyer@gok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