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달빛왕과 달빛대통령

[데스크라인] 달빛왕과 달빛대통령

미국 언론의 표현이 재미있다. 문재인 정부를 '달빛(Moonshine) 정부'로 비유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펼친 '햇볕(Sunshine) 정책'에 빗댄 것이다. 문(Moon) 대통령의 성을 조합한 기지가 돋보인다. 한반도 대치 국면을 완화하려는 달빛정책이 햇볕정책보다 더 현실성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이 때문인지 한국 언론에서도 문 대통령을 '달빛대통령'으로 호명하는 기사가 가끔 눈에 띈다.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를 이룬 정조도 '달빛왕'으로 불렸다. 어느 날 대신들과 밤늦게 국정을 논하다 창문을 열고 신하를 가르친 일화는 유명하다. 대궐을 환하게 비추는 달을 가리키며 그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군주가 달이라면 그 달빛이 비추는 만물은 곧 백성이다. 하늘이 주신 선한 본성을 회복하고 백성들 개개의 성품과 기질에 따라 천명이 올바로 발휘하게 이끌려면 군주가 먼저 치열하게 수신해 자신의 빛을 찬연히 밝혀야 한다.”

그는 달빛을 가리는 구름, 즉 간특한 신하와 당쟁을 없애려고 했다. 탕평책을 인사 원칙으로 삼았다. 침전에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는 편액까지 달아놓았다. 달빛이 수만 개의 시냇물을 비추듯 백성과 직접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왕릉을 방문하며 백성을 직접 만나는 능행(陵幸)을 여러 차례 거행했다. 24년 재위 기간에 무려 64차례나 능행에 나섰다. 1년에 세 번꼴로 도성 밖에서 민의를 수렴했다. 다른 조선 국왕이 2년에 한 번 정도 도성 밖으로 나간 것과 대비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열흘 남짓 지났다. '달빛대통령'의 행보에서 '달빛왕'의 그림자가 보인다. 대탕평 인사를 표방한 초반 인선에선 그동안 소외돼 온 호남 인사가 대거 발탁됐다. 스승의 날에 일선 학교를 방문하는가 하면 5·18 항쟁 기념식 현장을 찾는 '현대판 능행'도 펼쳤다. 기자회견에서 예정에 없던 즉석 질문을 받겠다며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썼다. 이런 모습을 본 국민 87%가 '문 대통령이 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당면한 경제 위기부터 극복해야 한다. 경제 주체인 기업인과 교감하는 것이 시급하다. 조선시대 정조도 수시로 상인과 만났다. 현장에서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경제 활성화 아이디어도 얻었다. 금난전권 혁파와 같은 혁신 정책도 현장의 목소리를 들은 뒤 수립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재계와 잘 소통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기업인이 많다. '대기업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교수와 장하성 교수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내정되면서 우려는 더 높아졌다. 국민 대다수가 소통을 잘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재계는 오히려 소외될까 걱정한다. 산업정책 입안자가 현장으로부터 멀어지면 과연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소통 단절을 우려하는 기업인의 활동 반경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산업 현장에 활력이 떨어질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도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악순환을 끊는 왕도는 대통령이 기업인을 자주 만나는 것이다. 대통령이 몸소 기업에 기를 불어넣는 이벤트를 시시때때로 열면 더욱 좋다. 달빛왕 정조가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듯 달빛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르네상스를 열었으면 좋겠다. 재계와도 막힘없는 소통을 기대한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

조선시대 정조는 수시로 능행에 나서 백성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정조 능행도를 보면 백성이 왕의 행렬을 보기 위해 쏟아져 나와 가까이에서 머리를 꼿꼿이 들고 관람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만큼 격의 없이 소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정조는 수시로 능행에 나서 백성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정조 능행도를 보면 백성이 왕의 행렬을 보기 위해 쏟아져 나와 가까이에서 머리를 꼿꼿이 들고 관람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만큼 격의 없이 소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