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26> 제발, 포기하지 마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lt;26&gt; 제발, 포기하지 마

가끔 채널을 돌렸을 때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아이돌이나 가수를 뽑는 토너먼트 방식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지원자들은 심사위원 앞에서 외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라는 결의가 한결같다. 미션 수행 과정에서 눈빛은 모두 간절하다.

미션이 주어지고 개인 역량을 판단해야 할 쯤 '열심히 하겠다'던 지원자가 중도에 포기한다. 긴장을 하면 노래 가사를 까먹고 춤동작을 잊어버린다. 천성이 착해서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걸 힘겨워하는 사람도 있다. '둘 중 하나만' 선택되는 상황 역시 어김없이 찾아온다. 작은 실수에도 백기를 들고 선한 양심으로 분별력을 잃는 지원자를 보는 일은 안타깝다. 경쟁 구도에서 '열심'과 '최선'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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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흥행을 위한 '악마의 편집'이 누군가의 희생을 볼모로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본다. 앞뒤 자르고 편의상 흥행요소만 내보낸다는 것쯤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잘려나간 필름 사이로 보이는 게 있다. 지원자의 간절함이다. 악마의 가위질로도 가려지지 않는 간절함은 그의 눈빛에, 불끈 쥔 주먹에, 이마의 땀방울에 표현된다.

외모가 타 지원자보다 떨어져도, 춤 실력이 기대에 조금 못 미쳐도 가창력이 아쉬워도 매번 주어지는 미션에 열심히 참여하는 지원자는 시청자도 가려낼 줄 안다. 심사위원도 그런 지원자에게 가능성을 본다고 했다. 무엇보다, 시작은 미약해도 시간이 갈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것이 그들이 외친 '열심'과 '최선'이다. 모두가 즐거운 관전 포인트다.

'쇼미더머니' 역시 최고 '래퍼'를 뽑기 위한 경쟁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몇 년 전에 방영된 쇼미더머니 시즌 4에 래퍼 스눕독이 심사위원으로 나왔다. 지원자에게 주어진 미션은 마이크를 먼저 빼앗은 사람이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우승 후보라 여겼던 한 후보가 마이크를 양보하고 경쟁을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경쟁에서 양보를 미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간절함이 결여된 것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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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원자가 스눕독에게 '아름답지 않은' 경쟁규칙의 문제점을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주목할 만하다.

“스포츠에서 경쟁이 끝나면 악수도 하고 웃기도 하지만 경쟁 중에는 악수도 웃지도 않는다. 그리고 인생에서 몇 개는, 인정하고 따라야만 하는 룰이 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장군이었던 주인공이 노예로 팔려 검투사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그가 뭣도 모르고 끌려간 곳은 최신의 무기로 무장한 검투사와 싸워야 하는 원형경기장이다. 그에게 달랑 낡은 칼 한 자루 쥐어 줄 뿐이다. '알아서 살아남든 말든' '어디 이길 테면 이겨봐' 식이다.

경쟁이 항상 공정한 것만은 아니다. 원칙도 규칙도 없는, 말도 안 되게 불합리한 경우도 있지만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은 그래도 싸운다.

경쟁의 틀 안에서 선행을 베풀고 인생을 즐기고 사랑을 하는, 이 모든 건 우선순위로부터 잠시 내려놔야 한다. 경쟁이 끝난 후 선한 양심으로 토닥이면 된다. 자신의 치열함에 냉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짓누르는 게 가슴 아픔 사람이라면 경쟁을 선택해선 안 된다.

물론 경쟁은 싫다. 상대방을 누른 기쁨만큼 이겨서 미안한 마음이 오래 남아서다. 기쁨도 미안한 마음도 우리가 배워야 할 인생의 레슨이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