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풀과 나무, 그리고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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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라인]풀과 나무, 그리고 정권

대략은 설명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어가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주제가 있다.

동물과 곤충의 구별, 과일과 채소의 종류 등 매번 인터넷 검색 서비스 이용을 유도하는 내용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나무와 풀의 차이다.

풀을 정의하면 줄기가 딱딱해지지 않아 겨울을 넘기면서 시드는 식물을 총칭한다.

풀의 범위 안에서도 꽃이 두드러지는 것을 '초화(草花)', 잎이 두드러지는 것은 그냥 '풀(草, Grass)'이라고 한다.

해를 묵을수록 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나무와 달리 풀의 경우는 비록 여러해살이라 하더라도 줄기 부피의 성장은 한 시즌(통상 1년) 동안만 이뤄진다. 줄기 속의 구조가 '부름켜'라 불리는 형성층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뿌리 번식을 통해 옆으로 풍성하게 불어난다. 외양이나 이름과 달리 대나무, 야자수가 나무 아닌 풀로 분류되는 이유다.

최근 우리나라 상황을 보며 나무와 풀을 다시 떠올려 봤다.

지난달 26일 8개 부처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및 부처별 직제 개편과 관련한 법령안이 심의·확정, 공포·시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 조직 개편으로 중앙행정기관은 기존의 17부 5처 16청·2원 5실 6위원회 등 51개에서 18부 5처 17청·2원 4실 6위원회 등 52개로 늘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신설되는 한편 국민안전처의 폐지에 따라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이 외청으로 독립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부처명이 변경되고, 행정자치부는 국민안전처와 통합해 행정안전부로 개편됐다.

문 대통령은 7월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부 조직이 개편되고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확정되는 것으로 새 정부의 틀이 갖춰졌다”면서 “이제 새 정부가 본격 출범한 셈”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춰 정부 경제정책 방향도 발표하고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 대전환을 선언했다. 이번 주에는 새 정부의 세제개편안도 나오고, 조만간 가계 부채 대책과 부동산 규제안 등 주요 정책도 발표된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전 정부의 색깔 지우기에 급급하다. 정부 조직마저 5년 시한부가 일상화됐다. 물론 5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5년이 지나면 또 조직 개편부터 나선다. 이번 정부의 조직 개편이 익숙한 것도 이전에 경험한 어느 시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현 정부는 특수한 상황에서 출범한 정권이니만큼 개혁과 성공 열망이 어느 때보다 크다. 이 때문인지 각종 정책을 쉼 없이 토해 내고 있다. 한 시즌만 살다 가는 '풀'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앞으로의 행보다.

정권 출범과 함께 천명했듯 그동안 쌓인 적폐를 해소하며 다양한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제3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볼 때 문재인 정부가 임기 5년 안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상당수다.

현 정부도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온 적폐와 경제 패러다임을 임기 5년의 정권에서 모두 풀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민국은 한 시즌만 사는 '풀'이 아닌 '나무'여야 한다. 매년 '부름켜'라는 형성층 조직을 키워 가야 한다. 그동안 정권이 마치 한 시즌(5년)만 존재하는 것처럼 지내온 것과 같이 지내면서 범한 어리석음을 이어 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전 정권에서 쌓아 온 성과는 이어 가고 차기 정권이 좋은 성과를 내도록 토대를 닦겠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현 정부의 임기 5년 동안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도 좋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뿌리 깊은 아름드리나무의 '부름켜' 가운데 하나면 족하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