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5주년 특집 Ⅱ]퍼스트무브 '기술'<1>AI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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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구글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 뒤 한국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알파고는 AI가 결코 넘을 수 없다던 바둑마저 인간을 뛰어넘으며 본격적인 AI 시대로 진입을 알렸다. 올해는 알파고가 세계 최강뿐 아니라 바둑에서 '입신(入神)'의 경지라는 프로 9단 기사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도 꺾을 수 없는 '신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그만큼 각 분야 AI 기술력도 한층 발전했다.

글로벌 경쟁도 치열하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미국 기업뿐 아니라 바이두,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까지 가세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AI가 도입됐다. AI로 혁신하려는 스타트업도 우후죽순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 카카오,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AI를 활용한 서비스와 제품을 앞다퉈 선보였다. 자율주행차, 음성 기반 개인비서, 콘텐츠 추천 등 AI를 활용한 여러 서비스가 대중에게 공개됐다. 알파고 충격 이후 1년 반 동안 AI는 다양한 생활 영역으로 침투를 시도하고 있다.

네이버 AI스피커 '웨이브'<사진 네이버>
네이버 AI스피커 '웨이브'<사진 네이버>

◇'약인공지능' 적용 분야 확대, 하드웨어와 결합 가속화

AI는 의료부터 예술까지 다양한 분야로 적용이 확대된다. 완벽한 인간처럼 학습하고 기능하는 '강인공지능'은 아직도 요원하다. 반면에 특정 분야에 한정된 약인공지능 기술은 급속도로 기존 산업과 결합,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기존 산업에 축적된 빅데이터는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는 AI 방법론 '기계학습(머신러닝)'을 만들거나 서비스 혁신을 일으킨다. 기계학습 일종인 딥러닝 기술은 인간 신경망을 모방한 인공신경망을 활용,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영역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번역 서비스가 대표적인 분야다. 구글 번역, 네이버 파파고 등 기계번역 서비스는 기존 통계 기반 번역(SMT)에서 인공신경망 번역(NMT)을 도입, 번역 품질을 크게 개선했다.

의료 영역에서는 사진 판독 등 의사 한계를 보조하는 기술이 사용된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성과가 나온다. 구글은 지난해 AI 기술을 구글 데이터센터에 적용했다. AI가 구글 데이터센터 냉각설비를 자동 관리하게 해 냉각비용을 이전보다 40%나 줄였다.

현재는 인간 창의성이 필수인 예술 창작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구글은 마젤란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 해당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지를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작품처럼 변환하는 AI 알고리즘도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광주과학기술원 안창욱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팀이 AI 작곡가 '보이드'를 개발했다. 보이드는 6월 두 번째 디지털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AI와 하드웨어 결합도 가속화된다. 자동차, 스피커 등 기기가 AI와 접목됐다. 다양한 기기가 온라인으로 연결되면서 다변화된 플랫폼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AI 스피커는 홈 사물인터넷(IoT) 중심으로 떠올랐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 다양한 가전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스피커가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미 국내외에서 AI 스피커 제품이 우후죽순 출시됐다. 아마존 '에코', 구글 '구글홈' 등 제품이 나오자 국내에서도 네이버 '웨이브', SK텔레콤 '누구' 등 AI 스피커가 쏟아지고 있다. 카카오도 9월 내 AI 스피커 '카카오미니' 판매를 시작한다.

홈 사물인터넷은 음성 기반으로 조작하기 때문에 자연어 처리·음성인식 등 AI 기술이 활용된다. 음성 인터페이스는 다양한 선택지를 한눈에 보여주기도 힘들다. 음악, 배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용자 취향을 학습해 추천하려면 AI 적용은 필수다.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연구가 확산되면서 자동차와 AI도 결합된다. 자동차는 일종의 모바일 기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차내에서 음성 명령으로 조작하려면 AI 활용은 필수다. 기계가 다양한 도로 환경을 인식해 가장 빠르고 안전한 운행을 보장하려면 현재보다 더욱 고도화된 기술력이 요구된다.

구글, 애플, 바이두, 네이버 등 국내외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기술을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플랫폼을 선점하려는 인터넷기업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국내에선 네이버가 지난달 IVI 플랫폼 '어웨이'를 공개했다. 차량공유서비스 '그린카' 차량 3000대까지 순차 적용한다. 카카오도 AI 플랫폼 '카카오아이(I)'와 현대·기아자동차 IVI 기술을 접목, '서버형 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한다. 9월 제네시스 G70에 처음 적용된다.

카카오미니 이미지<전자신문DB>
카카오미니 이미지<전자신문DB>

◇중국의 AI 굴기

국내에서도 AI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지만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위기감이 감돈다. 진원지는 중국이다. 중국 학계와 산업계는 전폭적인 정부 지원을 앞세워 AI에서도 미국을 거세게 추격한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 플러스 AI 3년 행동 실시방안'에 따라 2018년까지 1000억위안(약 18조원)을 투자한다. 반면 한국은 연구,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격차가 벌어진다.

'70% 수준에 불과하다' '2.4년 뒤졌다' 등 선두국가와 한국 AI 경쟁력 차이를 지적하는 보고서가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미래 경쟁력을 평가하려면 논문 수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발표한 AI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동안 한국이 발표한 톱클래스 AI 보고서는 단 1건에 불과했다. 인용건수 0.1% 안에 드는 우수 보고서 기준이다. 미국 28건, 중국 24건과 비교해 턱 없이 부족하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해외 유수 AI 학회를 가면 미국, 중국뿐이다. 중국은 바이두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스타트업까지 부스를 차려 기술을 과시하는데 국내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중국은 창업 2년 밖에 안 된 스타트업이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실리콘밸리 연구소를 세운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구글 자율주행차<전자신문DB>
구글 자율주행차<전자신문DB>

◇인력난 심각, 규제완화 등 총체적 문제 해결해야

AI 전문가들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인력 부족을 꼽는다. 새로운 기술 개발은 고사하고 기존 공개된 기술을 서비스에 적용할 실무 인력조차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AI 전문 인력을 배출할 학계 역량이 부족하다. 1990년대부터 20년이 넘도록 국내 AI 연구가 암흑기를 맞으면서 벌어진 문제다.

올해 네이버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 인수는 이런 문제점을 드러내는 상직적 사건이다. 네이버는 인수를 통해 AI 전문 연구원 80여명을 확보했다. 그만큼 국내에 경쟁력 있는 AI 연구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카카오도 국내 대학을 돌아다니며 AI 인력 채용에 나서지만 신입채용만으로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진형 지능정보기술연구원장은 “국내 AI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인접 학문 전공자를 집중 교육해 AI 실무 인력을 양성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역량 강화 없이 글로벌 경쟁에 한계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도 “국내에 AI 전문가를 교육할 역량이 있는 곳이 드물다. 한 해 배출되는 인력이 세 자릿수를 넘기 어렵다”면서 “박사과정까지 거쳐야 하는 고급 인력은 10년 이상 걸려 더욱 양성하기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력뿐 아니라 규제 완화, 기업문화 등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전체적인 구조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계가 스스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는 연구다보니 빅데이터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이 엄격해 활용이 제한된다. 새로운 분야에 AI를 적용하려고 해도 법에서 허용치 않은 분야에 섣불리 뛰어들기 어렵다. 금지한 것 빼고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제조업 중심 기업문화도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김 원장은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은 수집 목적과 다른 활용을 금지하는 등 산업 활성화 측면이 고려되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AI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을 활성화하려면 규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AI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학계, 기업, 정부 등 각계각층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형태로 개선돼야 한다”면서 “AI 경쟁력 강화 작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전체 구조 변화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