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5주년 특집 Ⅱ]퍼스트무브 '부품' <4> 차세대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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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는 흔히 4차 산업혁명의 '심장'으로 비유된다. 반도체가 두뇌, 디스플레이가 눈이라면 배터리는 심장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자율주행차, 로봇, 드론, 스마트그리드, 사물인터넷(IoT) 같은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도 배터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난해 다보스포럼이 선정한 '우리 일상을 바꿀 10대 미래유망기술'의 하나로 '차세대 전지'가 꼽혔다. 차세대 전지는 기존 성능을 개선한 이차전지를 의미한다. 1991년 소니가 리튬이온배터리를 상용화한 이후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MP3 플레이어, 태블릿 등 각종 IT 기기의 등장과 소형화·고용량화가 가능했던 것처럼 향후 자동차와 에너지 저장 분야에서도 차세대 전지 등장에 따라 이 같은 파괴적 혁신이 가능해질 수 있다.

후발 주자로 시작해 세계 최정상 업체가 된 삼성SDI와 LG화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맞은 동시에 위협도 받고 있다. 중국은 이미 한국을 밀어내고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 최대 생산국이 됐다. 중국 내 배터리 생산 업체만 3000군데에 이른다. 컨설팅 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능력은 107.5Gwh로 62% 점유율의 압도적 1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13%(23.0Gwh)에 그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더 싸고, 더 오래가고, 더 안전한 배터리 기술 개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차세대 전지 개발 과제를 충실히 이행해야 현재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 LG화학과 삼성SDI를 거쳐 현재 배터리 컨설팅업체 TOP21 대표인 선우준 박사는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전략을 짜는 'Back to the R&D'가 필요한 시기”라고 조언했다.

2020년 중국의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능력은 107.5Gwh로 62% 점유율의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자료=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
<2020년 중국의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능력은 107.5Gwh로 62% 점유율의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자료=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

◇新소재 개발 필수

시장 수요에 비해 배터리 기술 발전 속도는 더디다. 무거운 무게와 짧은 지속 시간, 비싼 가격, 안전성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면 새로운 소재 기술 개발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리튬이온 배터리 4대 핵심 소재로 꼽히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기술력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해 발간한 '4차 산업혁명을 밝힐 리튬이차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이차전지 소재 시장점유율은 양극재 9.6%, 음극재 2.3%, 분리막 16.3%, 전해액 10.6%에 불과하다.

리튬이온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양극재는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로 최근 출력, 안정성, 수명, 가격 등을 개선하기 위해 코발트 함유량을 축소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이 니켈 비중을 80%까지 높인 NCM811 양극재를 적용한 배터리 양산을 올해 말 시작해 내년 3분기 양산 전기차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화학도 고객사와 협의해 이에 앞서 NCM811 배터리 양산에 나서겠다는 목표다.

충전 시 리튬이온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는 음극재 소재로는 흑연이 주로 쓰인다. 인조흑연 시장은 일본이, 천연흑연 시장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보다 최소 두 배 이상 용량을 가진 리튬이온전지 개발을 위해서는 새로운 음극재가 필요하다. 유력한 후보는 흑연보다 저장용량이 10배 높은 실리콘이다. 충·방전 시 부피가 팽창하는 스웰링 문제가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리튬이온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분리막 시장은 현재 아사히카세이, SK이노베이션, 도레이가 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20년까지 습식 분리막 시장 세계 1위를 노리고 있다.

양극과 음극 리튬이온의 전달 매개체로 쓰이는 전해질은 현재 주로 쓰이는 액체전해질보다 안정성을 높인 고체전해질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고체전해질을 사용해 분리막이 필요 없고 발화 위험성도 낮춘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를 누가 먼저 상용화 하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차세대 이차전지 후보군으로는 리튬황전지, 리튬에어전지, 나트륨·마그네슘 이온 전지가 있다. 그러나 기술 개발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우준 박사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소재가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국내 소재 업체들은 대부분 영세하고 스스로 기술 기반을 갖추기 보다는 개발 주체인 전지 업체로부터 용역을 받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면서 “참신하면서도 가격이 싼 소재 개발과 공급이 가능하려면 소재 업체들이 먼저 대형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중국 견제할 '규모의 경제' 확보해야

리튬이온 배터리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벤치마크 미네랄에 따르면 중국의 배터리 생산능력은 2016년 16.4Gwh에서 2020년 107.5Gwh로 급증할 전망이다. 중국 CATL은 2020년까지 세계 최대 50Gwh 규모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테슬라가 파나소닉과 함께 거대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건설하면서 2020년 미국의 배터리 시장점유율도 지난해 3% 수준에서 2020년 38%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배터리 시장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 등 관련 내수 시장 활성화를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2015년 기준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2558대로 세계 전기차 판매량 66만대 중 국내 전기차 시장 비중은 0.4%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은 내년부터 전기차 의무생산제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9개주에서 무공해차량 생산의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 노르웨이, 영국 등이 장기적으로 휘발유와 경유 차량 판매를 중단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정부의 전기차 확산 정책에 따라 배터리 내수 시장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수직계열 체제를 갖추는 것도 하는 것도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데 중요한 과제다. 중국의 경우 리튬, 흑연, 코발트 등 리튬이온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광물부터 소재, 부품, 배터리, 전기차까지 생태계가 수직계열화돼 있다.

특히 배터리가 다른 전자 산업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은 광물 재료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으로 금속 자원을 확보할 방안을 국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국내 배터리 제조사는 원재료 가격 급등에 따른 타격을 받고 있다. 리튬 확보가 어려워질 경우 전기차 시장 개화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SDI가 칠레 리튬 광산 개발에 도전장을 던지는 등 대응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다양한 기업의 협업이나 컨소시엄 구성을 위해 정부의 조정 기능 강화도 과제로 지적된다.

심권용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업관리처장은 “투자비가 최소 몇 억달러 들어가는 광산 개발을 어느 한 업체가 홀로 진행하기에는 너무 많은 리스크가 있다”면서 “한국은 세계 굴지의 배터리 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는 각각 LG상사·삼성물산 같은 상사 계열사를 두고 있는 만큼 대기업이 중심에 서서 소재 업체들과 실수요자인 자동차 제조사들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스타트업 아이오닉 머티리얼즈가 개발한 고체 알칼리 폴리머 배터리 (사진=아이오닉 머티리얼즈)
<미국 스타트업 아이오닉 머티리얼즈가 개발한 고체 알칼리 폴리머 배터리 (사진=아이오닉 머티리얼즈)>

◇'혁신 아이디어' 스타트업 등장도 주시해야

배터리 산업은 기본적으로 대규모 생산시설 기반의 제조업 형태로 진화했다. 미래에는 팹리스와 파운드리가 각기 존재하는 반도체 산업처럼 개발과 생산이 분리된 형태로 진화할 조짐도 보인다. 생산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스타트업이 기존 제조사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형태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혁신 기술을 갖추지 못할 경우 기존 대형 업체도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

뉴욕주에 위치한 스타트업 베스테크놀로지는 뉴욕주립대에서 분사한 첫 회사로 전기차와 소비자 기기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 밀도를 높이고 충전 속도를 빠르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특허를 확보하고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뉴욕주에너지연구개발국으로부터 140만달러 투자를 받기도 했다.

영국 사우스햄튼대학교에서 창업한 스타트업 일리카테크놀로지는 IoT 시대에 대비한 박막 형태 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고체 배터리지만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충전 속도를 6배 빠르게 할 수 있고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는 두 배 높일 수 있다고 회사는 설명하고 있다. 이 회사는 초기에 토요타로부터 연구 자금을 지원받았다. 일리카는 TSMC 같은 기존 파운드리 업체를 통해서도 자사의 고체 배터리 생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아이오닉 머티리얼즈는 고체 전해질을 활용한 알칼리 폴리머 배터리를 만든다. 총을 쏘거나 못질을 해도 폭발하지 않는 배터리를 홍보하고 있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창업자인 빌 조이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300만달러의 연구개발 지원을 받기로 했다.

영국 넥시온은 차세대 리튬이온 배터리용 실리콘 음극 소재를 개발하는 업체다. 탄소계보다 리튬 저장 용량이 10배 이상 큰 실리콘을 활용해 배터리 용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시제품 생산 라인을 가동 중이며 라이센스 제공을 비즈니스 모델로 하고 있다.

미국에 위치한 24M테크놀로지는 생산 속도를 높이고 가격은 절반으로 낮출 수 있는 반(半)고체 전지를 개발한다. 미국 배터리 제조사 A123 창업자 중 한 명인 옛밍 치앙 MIT대 교수가 창립멤버다. 반고체 리튬 이온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스타트업 인수를 통한 기술 확보 움직임도 보인다. 무선청소기로 유명한 다이슨은 지난 2015년 미국의 고체 배터리 스타트업 삭티3(Sakti3)를 인수했다. 자동차 부품·전동공구 업체 보쉬 역시 고체 배터리 기술을 보유한 미국 스타트업 시오를 인수했다.

한국전지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중기 KIST 박사는 “궁극적으로는 스마트폰이 입는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배터리도 이에 맞춰 플렉시블한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면서 “동시에 고용량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패브릭처럼 자르거나 세탁을 해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도록 연구개발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