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5주년 특집 Ⅲ]전문가 4인, "국가 R&D, 시스템혁신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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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정부의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은 19조6000억원이다. 올해 비해 0.9% 느는데 그쳤다. 역대 최저 수준 증가율이다. 내년도 경상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4.5%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줄었다.

전문가들은 한정된 예산 속에서 '투자 전략'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R&D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연구 방향 대전환과 혁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R&D 시스템으론 '잘하는 것을 조금 더 잘하는 정도'에 머물 것이라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R&D 시스템 재건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창간 35주년 특집 Ⅲ]전문가 4인, "국가 R&D, 시스템혁신 절실"

창의·도전적 연구 투자 확대 필요성도 강조했다. 연구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자율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과제심사 확대와 연구행정 절차 간소화도 병행돼야 한다.

집중 투자 전략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핵심기술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유용한 소재산업 육성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이 소재의 대외 의존도가 높다. 기업이 신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기초소재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자신문은 창간 35주년을 맞아 전문가 좌담회를 열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 R&D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참석자(가나다 순)

△유웅환(공학박사, 전 인텔 수석매니저)

△임기철(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임윤철(기술과가치 대표)

△임춘택(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사회=박재민 건국대 교수

박재민 건국대 교수
<박재민 건국대 교수>

◇사회(박재민 건국대 교수)=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융합과 공유가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 연구개발(R&D) 환경에선 가장 취약점인 것 같다. R&D, 지금과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임기철(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흔히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초지능-초연결-초융합'이라고 한다. 지식의 융합과 공유가 핵심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기술 간 융합, 인공지능(AI) 기술과 다른 기술의 융합만을 강조한다. 기술과 기술, 과학과 공학, 나아가 인문학까지 아우르는 큰 의미의 융합과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한국이 마주한 세 가지 한계는 성장률, 시스템, 신뢰로 요약할 수 있다. 이 한계가 R&D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추격자(패스트 팔로워) 전략에서 선도자(퍼스트 무버) 전략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시스템 재건이 필수다.

재정 당국은 일선 부처를 믿고, 일선 부처는 현장 연구자를 믿어야 한다.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하나의 목표를 놓고 여러 연구팀을 경쟁시키는 '토너먼트-릴레이식 R&D'를 제안한다. 미세먼지·조류독감 같은 사회 난제 해결에 여러 연구팀이 동시에 R&D를 시작하고, 일정 기간 경과 후 평가해 성공 가능성이 있은 팀 쪽으로 지원을 집중시켜 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유사·중복' '과제 실패' 같은 금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연구 몰입도가 높아져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임윤철(기술과가치 대표)=정부의 기존 R&D관리시스템은 '탈나지 않게, 잘 나눠주기 위한 과제 선정'과 '성과보다는 관리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결과 평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추격형 R&D를 위해 만들어졌고, 그간 수정 없이 너무 오래 사용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유와 융합'을 끌어내야 한다. '공유'를 위해서는 정부가 지금까지 해 온 지식공유시스템을 보완하면서 더 빠른 속도로 '지식공유시스템'을 선진화시켜야 한다. 기업의 속성과 사람의 습성을 고려해 디자인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융합'을 위해서는 R&D 주체에게 융합의 초기 단계에 자유롭게 만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별도의 예산을 만들어야 한다. 융합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는 정부 R&D예산 지원을 추천한다.

◇임춘택(광주과학기술원 교수)=지난 2~3년 사이 R&D 예산 낭비가 심하다는 지적이 늘었다. 그 결과 2018년도 연구개발비가 적게 증액됐다. 하지만 R&D 실체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평가했는지 묻고 싶다. 평가 자체가 무질서하다. 솔직하면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지금의 R&D로는 '잘하는 거 조금 더 잘하는 정도'밖에 안된다. 그것이 누적되면 미래는 없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으로 가야 한다. 지금까지 하이리스크 연구과제는 기획, 평가단계에서 제외됐다. 전체 연구비 가운데 30%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과를 따지지 말고, 실패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

이원화된 연구개발 체제를 갖춰야 한다. 온라인 과제심사를 강화하고, 연구행정 절차도 대폭 간소화해야 한다. 1쪽짜리 과제계획서를 확대해야 한다.

◇유웅환 (공학박사·전 인텔 수석매니저)=문화, 시스템, 기술산업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문화 측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산업계는 조직 중심이었다. 사람 중심이 아니었다. 혁신을 이루는 주체는 사람이다. 권한의 자유를 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것저것 조금씩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가(스폐셜리스트)를 육성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들 전문가의 역량을 잘 융합할 수 있는 R&D 환경으로 바꿔야 한다. '1+1'이 2가 아니고 2 이상이 될 수 있다는 문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시스템 측면에서는 이제 한계가 왔다. 'S자 커브'를 제안한다. S자 커브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잠시 쉬어가더라도 기초 설계, 아키텍처를 잘 그려야 한다. 처음에는 성과가 적고 느린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큰 성장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기술산업 차원에서는 선도기술 확보와 기술 융합으로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5G 네트워크를 통해서 지능정보 분야 경쟁력을 높이고, 신소재 그래핀 등을 접목해 제조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기존 제조산업의 자동화·효율화로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정보통신기술(ICT) 접목과 소재 혁신이 필요하다.

◇사회=R&D와 기술혁신 목적 중에서 중요한 하나는 성장동력 확보다.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걸출한 성공이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하면 신성장동력을 R&D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임춘택=우리 산업은 압축 성장의 역사다. 경공업, 화학공업, 중공업, 정보통신(IT)산업 등 10년단위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다음 성장 동력을 찾지 못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쌍두마차형(투트랙) 산업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5대 주력산업은 전자·통신, 기계·자동차, 석유·화학, 조선·해양, 철강·소재산업이다. 중국과 인도의 거센 추격을 늦출 수 있도록 IT 융합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이들 5대 주력 산업은 IT융합 퍼스트무버전략으로, 5대 신산업은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가야 한다.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우리가 육성해야할 신산업은 의료바이오, 에너지·환경, 안전산업, 지식서비스, 항공우주 등 이른바 'MESIA(메시아)' 산업이다. MESIA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를 정교하게 만들거나 없애주고, 공공 R&D를 통해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민관협력으로 수출산업을 육성한 50년 '축적의 시간'이 있다. 유연하고도 실용적인 사고와 전문성을 갖춘 관료를 전진 배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 외에 미국 국립보건원(NIH), 항공우주국(NASA) 같은 '기술중심기관' 설립도 검토해볼만 하다. R&D뿐만 아니라 사업화, 일자리창출, 기업육성 등까지 전담한다.

◇임윤철=기술 실용화 주체는 결국 기업이다. 과거 'G7프로젝트(1990년대 시행된 과학기술 추진 계획)'가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것은 대기업이 원하는 분야 R&D를 공공이 앞서 해줬기 때문이다. 당시는 산업의 흐름을 예상해서 준비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정부에 선행연구를 해달라는 기업조차 많지 않다. 사실 기업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 지 정확히 모른다. 기업의 기술수요를 받아 정부가 R&D 과제를 지원하지만 이른바 '대박'이 될 만한 미래 기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난 10여년 동안 제대로 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이유다. 앞으로는 강소기술기업이 주관하는 신성장동력 후보 과제에 관심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연구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 연구원이란 직업도 AI로 대체될까.

◇임기철=AI 분야 최고 권위자인 앤드류 응은 '인간이 1~2초 정도 고민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모두 AI가 대체할 것'이라고 했다. 단순 연구업무는 AI가 도와줄 것이다. 창의적인 연구가 많아져야 한다. 그것을 위한 역량은 결국 '창의성, 감수성, 정교함' 등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다움'이다. 문재인 정부도 과학기술 정책을 '사람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인간다움을 다시 찾아야 R&D가 활력을 찾고, 4차 산업혁명 대응도 신바람나게 할 수 있다.

이세돌 기사가 알파고와의 4국에서 보여준 78수가 '신의 한 수'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 수야 말로 '인간의 한 수'였다.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의 처절한 고민과 직관에서 나온 한 수다. AI 시대를 맞는 연구원의 경쟁력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정부는 연구원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율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그야말로 '인간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유웅환=단순 데이터 분석·측정이나 설계 방법론 등은 자동화가 가능하다. 아직까지 AI는 복합적 사고는 힘들다. 연구원도 '파이(π)형 인재'가 돼야 한다. 두 가지 이상의 깊은 전문성을 갖고 기술을 융복합해야 한다. 보통 과학기술이라고 하면 순수과학와 응용과학이 모두 포함된다. 한국에서 나는 ICT 전문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과학기술자라고도 생각한다.

반도체 시스템을 개발할 때 물리학적으로 풀어나가야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다. 순수과학자도 응용과학자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역량을 키우면 기계가 대체하지 못할 것 같다.

◇사회=4차 산업혁명에 기업은 '관망'만 하는 듯하다. 글로벌기업에 비해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임윤철=우리나라의 글로벌기업은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본다. 삼성전자가 전장부품회사 '하만'을 인수하는 것도, 세계적인 전기자동차 회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달라지는 산업 형태에 맞춰 'A~Z 온 디맨드(on Demand)'를 준비해 보길 권한다. 표준형 제품의 대량생산 시대는 갔다. 다품종·소량 주문생산 시대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라도 ICT가 많이 활용된다. 사람 성향을 파악하려면 빅데이터와 분석 기술이 필요하다. 비디오 온 디맨드(VOD)의 V만 있는 것이 아니라 A부터 Z에 해당하는 모든 제품 서비스를 고민해 보자. 가령 H는 Hotel이라 본다면, 에어비앤비가 하고 있다. C를 Car로 본다면 우버가 시작했다.

◇유웅환=글로벌 기업과 비교했을때 우리나라는 일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선도 기업이 했는지,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벤치마킹한다. 일하는 방식 자체를 주도하지 않았다. 빠르게 카피해서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탈피해야 한다. 실패를 해도 두려워 하지 말고, 금지된 것 빼고는 모든 것을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이 행복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직장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좋은 사람은 좋은 직장으로 간다. 좋은 직장이 좋은 사람을 빨아들인다. 계급장 떼고 신입사원이 자신의 의견을 많이 내놓을 수 있도록 '애플 해적정신'도 참고해 볼 만하다. 자유로운 조직 문화가 4차 산업혁명 대응의 핵심이다.

◇사회=정부의 R&D 미래투자전략, 어떻게 해야 하나. 어느 분야에 집중해야 하나.

◇임윤철=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정부는 제품에 소요될 소재 개발과 생산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소재의 대외 의존도가 크다.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두 대기업이 호황이다. 두 기업에 소재, 장비 등을 제공하는 일본 기업은 요즘 표정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우주항공산업에 본격 도전하는 입장에서, 그 전초전으로 항공 소모성자재(MRO)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항공 관련 경량소재산업에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 기업에 소재개발 투자까지 하라고 하면, 그 산업의 특성상 매우 어렵다. 정부가 적절한 지원책을 내놓아야 4차 산업혁명에 유용한 소재산업을 키울 수 있다.

◇임춘택='공공 R&D'를 강화해야 한다. 의료, 에너지·환경, 안전, 교육, 문화 등과 같이 공공재이면서도 민간의 자발적 투자가 제한적인 영역에 R&D를 집중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연연과 혁신도시를 신성장동력 육성의 전진기지로 하고, 대학은 창의적인 아이디어 연구와 창의적 인재양성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연연이나 대학 기관장에게 전체 R&D비 10% 정도는 자율연구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 '묻지마'로 줘야 한다. 혁신·도전적인 연구, 시급한 정책과제 등을 수행할 수 있게 하고, 대신 사후평가를 철저히 하고 공개하면 된다.

◇임기철=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내년도 정부예산안은 19.6조로 전년대비 0.9% 증가했다. 국내외 재정여건 악화, 재정건전성 요구, 복지 수요 증대 등으로 더 이상의 정부예산 증가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총량 증가보다는 현재 확보한 예산을 얼마나 알뜰하게 잘 쓸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 투자는 과거 산업경쟁력 확보에서 미래 대응을 위한 도전, 선제적 연구 투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체제와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재편을 이끌 핵심기술에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적 R&D를 추진해야 한다. 부처, 기술 분야, 지원대상, 개발 단계로 중복·파편화된 정부 R&D 사업을 구조조정해 투자 효율화를 병행해야 한다.

◇사회=문재인 정부가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부활시켜 설치했다. 혁신본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혁신본부 설치로 과학기술거버넌스는 완성됐다고 보는가.

◇유웅환=거버넌스 하드웨어는 잘 갖춰졌다고 본다. 소프트웨어 부분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실용화하는 등 단기 성과를 내는 한편, 중장기 투자와도 균형을 이뤄야 한다. 중장기 투자는 무형의 가치를 존중하고, 원천기술확보와 기초과학 육성, 그리고 정부의 정책을 신뢰할 수 있는 예측가능한 환경 등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현장에 믿고 맡기는 권한이양을 과감히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분명한 책임을 지게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민간 중심의 과학기술 거버넌스다.

◇임춘택=혁신본부가 20조원 규모의 범부처 연구개발비를 총괄 조정하는 것이 핵심 이슈다. 기획재정부로부터 권한을 가져오려면 여러 다른 부처로부터 '선수-심판 분리론' 문제제기에 답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스스로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자문회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행정편의상 혁신본부를 과기정통부 산하에 두었지만 부처 연구개발 기획조정업무를 총괄하게 해야 한다.

대신 현재의 조직은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기에 너무 작다. 적정 규모로 늘려줘야 한다. 과거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국가과학기술심의회 등이 병립했던 것을 새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 단일화했다. 과학기술 거버넌스를 통합했으므로, 이를 정점으로 R&D 총괄조정도 이뤄지는 것이 적절하다.

◇임기철=혁신본부는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 부처의 혁신역량을 결집하고, 범부처 차원의 혁신을 준비하는 구심점이 돼야 한다. 기능적 측면에서 과학기술에만 국한되지 않은 국가 혁신의 총괄 '플래닝타워'로 융합〃개방형 혁신의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정책 측면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포용적 성장에 기여하는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 혁신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방법론 측면에서는 혁신 주체간 협력을 강화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사회=대학과 출연연도 중요한 혁신주체다. 이들 역할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나.

◇임윤철=추격형 경제에서는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 이제는 R&D 목표를 정하기가 어려워졌다. R&D 주체에게 각자 좋아하는 연구, 잘하는 연구를 하도록 해야 한다. 밤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서 연구실로 뛰어나가고 싶도록 해야 한다.

경제·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연구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과 출연연을 보고 자꾸 기업을 지원하라는 식으로 역할을 강제 할당하지 말아야 한다. 보텀업 방식의 예산을 늘리고, 대학과 출연연에게 스스로 연구목표를 세우게 해서,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도록 하자. 이에 대한 평가는 1차로 3년 후, 2차로 5년 후에 하면 된다.

또 대학과 출연연의 기관 울타리를 낮춰 새로운 융합연구단을 만들고, 연구개발업 같은 연구개발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을 많이 육성하도록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기업이 대학과 출연연 연구결과를 인수해 새로운 사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기철=대학은 한마디로 자유로운 상상을 즐길 줄 아는 '융복합 인재 양성'이 주요 과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잠재 성장률은 3.2%다. 실제 성장률은 2.6~2.7%에 머물고 있다. 미래사회에 대비한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문제해결 능력과 협력, 기획, 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개인 과제 비중은 줄이고 협동하는 경험을 늘려야 한다.

전통적인 4개월 1학기 강의식 수업을 'P(합격)/F(미달)제'로 평가하는 팀티칭, 3학년 이상은 팀워크를 강화하는 제도를 시범 도입하는 방법 등을 권한다. 출연연은 고유 임무에 몰입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책무성 강화 역시 병행해야 한다. 출연연의 고유 임무 몰입을 위한 탈(post)-PBS 제도 설계, 대형 연구 수행을 위한 출연연 간 융합연구 체계 고도화 등이 절실하다.

◇사회=과학기술과 ICT가 '일자리와 사람'이라는 화두에 다가설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유웅환 공학박사
<유웅환 공학박사>

◇유웅환=일자리 확보는 산업 경쟁력에 달렸다. 5G 기반 지능정보 기술을 융합하는 등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야한다. 5G 기반 자율주행, VR·AR, IoT통신망과 융합 산업 간 시너지가 사례가 될 수 있다. 다만 지금의 논의는 ICT 융복합에만 치우친 감이 있다. 그래핀 등 신소재를 결합한 제조 기술 혁신이나, 핵융합 플라즈마 같은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 중심의 포용적 4차 산업혁명은 앞서 지적한 모든 비전과 목표를 포괄한다. 모든 국민이 4차 산업혁명의 기회를 누리게 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 복지제도 개혁 등의 사회혁신이 병행될 것이다. 생산성 증대로 인한 과실은 국민의 것이다.

◇임춘택=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는 창업과 기업성장을 통해 만들어진다. 경제사회적 약자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는 '포용적 혁신성장'이 중요한 시대과제다. 취약지대였던 중소벤처 육성과 기술창업, 청년창업 활성화를 위해 '실패자 재도전 프로그램'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연대보증제도의 완전한 철폐와 발명자를 보호하기 위한 지식재산보호제도를 보강해야 한다.

포용적 성장과 더불어 또 다른 한 축은 '혁신 성장'이다. 생계형 창업 대신 기술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기술신용거래제도 육성, 융자 대신 투자 중심으로 창업지원 전환, 클라우드 펀드 투자 촉진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초중고부터 발명과 기업가정신 교육을 강화하고, 대학에는 창업교육을 강화해 스웨덴 수준의 '친기업 정서'를 함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바라는 한마디.

임윤철 기술과가치 대표
<임윤철 기술과가치 대표>

◇임윤철=과학기술계 주요 자리에 인선 작업이 마무리됐다. 업계는 산업부문과 과학기술부문에 대한 현 정부의 장고(長考)에 크나큰 기대를 하고 있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큰 숙제이기 때문에 장고는 필수다.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바꾸려면, 공무원과 과학기술자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열정으로 장기간 노력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이 분야는 정치 성향이 다소 적기 때문에 오히려 새 정부에서 넓게 인재 등용을 해줬으면 한다.

◇임춘택=현재 시급한 국정과제는 한반도 안보 위협으로부터 촉발된 경제위기고, 근저에는 지난 10여년 간 악화된 산업경쟁력 문제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를 통한 포용적 혁신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이는 좋은 일자리 창출과 사람중심 경제체제의 근간이 된다.

이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벤처육성과 녹색성장, 창조경제의 교훈을 살려 '제2벤처 육성'을 추진했으면 한다. 또 정부부처 개편시 바이오기술(BT) 부처를 신설하기 바란다. IT 육성에 정보통신부가 기여했듯이, 메디컬 바이오 산업 육성에는 '생명의료부' 같은 BT 부처가 필요하다.

◇임기철=R&D와 혁신생태계를 전환하려면 무엇보다 규제개혁이 필수다. 정부가 시장 상황을 분석해서 필요한 규제를 사후에 만들겠다는 네거티브형 정책은 바람직하다. BT와 ICT 산업의 장애요인으로 지목되는 생명윤리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은 개선돼야 한다. 이 분야 신성장동력이 묻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동인으로 빅데이터를 꼽는 이유는 데이터 중심 사회로의 이행이 가속되리라는 전망 때문이다. 현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빅데이터 활용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공공데이터를 기계학습이 가능한 오픈 포맷으로 전환해 개방해야 한다.

◇유웅환=싱가포르 공무원은 노트를 가지고 기업 현장을 찾아다닌다.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를 조사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을 생각해 보자. 어떤 곳은 기울어져 있어서 썩고 있고, 어떤 곳은 많은 돌이 있어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고, 어떤 곳은 굽이굽이 흐르다 보니 비효율적이다.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정부 스스로 해야 한다. 예산권, 인사권을 쥐고서 '갑질'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산업 생태계는 건강하게 복원될 것이다.

정리=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