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과학향기]생체리듬을 깨뜨리고 사니까 온갖 질병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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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5살이 된 직장인 A씨. 최근 해외영업을 담당하게 되면서 부쩍 출장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외국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그것도 잠시,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몸상태가 말이 아니게 되자 곧 생각이 바뀌었다. 말 그대로 몸 안의 무엇인가가 어긋나버리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A씨와 같이 잦은 해외 출장을 가는 사람들이 극심한 피로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단지 피곤하거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몸 안의 생체리듬이 꼬이기 때문이다.

[KISTI 과학향기]생체리듬을 깨뜨리고 사니까 온갖 질병 온다

#지구의 자전에 적응한 생물들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산다. 천적을 속이기 위해 보호색을 띄거나 독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번식을 하기 위해 화려한 치장을 하기도 한다. 추운 곳에 사는 북극여우와 무더운 사막에 사는 사막여우는 겉모습부터가 확연하게 다르다.

특히 지구에 사는 생물체라면 반드시 적응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지구의 자전이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지구의 자전에 적응해 24시간의 주기성을 가지고 거의 모든 생리, 대사, 행동을 호르몬 단위에서 정교하게 조절한다. 이를 일주기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이라 한다. 우리에게는 '생체시계'라는 단어로도 잘 알려져 있다.

수면, 음식 섭취 같은 행동에서부터 호르몬 분비, 혈압 및 체온 조절에 이르기까지 일주기 생체리듬은 거의 모든 생물체의 행동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간단히 말해 밤이 되면 졸리고, 야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며, 끼니 때 배가 고픈 이유 모두가 생체리듬과 연관이 있다. 때문에 생체리듬을 규명하는 것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남았었다.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의 영예는 생체리듬을 제어하는 유전자를 찾아낸 3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좌측부터 제프리 홀 브랜다이스대학교 교수, 마이클 영 록펠러대학 교수, 마이클 로스바시 브랜다이스대학교 교수. 출처: Nobel Media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의 영예는 생체리듬을 제어하는 유전자를 찾아낸 3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좌측부터 제프리 홀 브랜다이스대학교 교수, 마이클 영 록펠러대학 교수, 마이클 로스바시 브랜다이스대학교 교수. 출처: Nobel Media>

#생체리듬을 제어하는 유전자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미국 록펠러대학의 마이클 영 교수와 브랜다이스대학교 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바시 교수는 이 생체리듬을 제어하는 유전자를 찾아낸 과학자들이다.

이들은 70년대 초 초파리 연구를 통해 일주기 생체리듬을 관장하는 피리어드(Period)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는 밤 동안에는 세포내에 PER 단백질울 쌓이게 만들고, 낮 동안에는 이들을 분해시키는 과정을 통해 생체시계가 작동되게 만든다.

이들의 발견 이후 많은 과학자, 특히 생명공학자들과 의학자들이 생체리듬의 규명 및 조절 연구인 시간생물학(chronobiology)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즉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논의됐던 '시간의 생리학'이 본격적인 분석과 적용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실제 같은 약이라도 언제 복용하느냐에 따라서 효과가 다르기에 24시간 생체주기를 잘 조절하면 항암제 같은 약물의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혹은 약물이 가장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시점을 파악해 집중적으로 투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같은 약이라도 시간 따라 효과 다르다

한편 시간생물학은 신약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신약 개발에 생체시계를 적용하면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때문에 생체시계의 정확한 계산을 위해 제약사에서 수학자 출신의 연구 인력을 기용하고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한창이다. 2014년에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경진 교수 연구팀이 사람의 기분이나 정서 상태의 리듬을 조절하는 핵심적인 작용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2017년 4월에는 울산과학기술원 연구팀이 24시간 주기의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새로운 생체시계 유전자(Ataxin-2)를 발견하기도 했다.

잦은 야근과 불규칙한 수면 등 현대인의 삶은 생체리듬을 깨뜨리는 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피로, 우울증, 암 등 수많은 문제를 가져온다. 출처: Shutterstock
<잦은 야근과 불규칙한 수면 등 현대인의 삶은 생체리듬을 깨뜨리는 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피로, 우울증, 암 등 수많은 문제를 가져온다. 출처: Shutterstock>

#제대로 된 생활습관의 소중함

이런 최신 연구결과는 우리의 삶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대인의 삶은 생물학적인 리듬에서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는 현대인의 삶과 맞지 않다. 사람들은 과도한 인공조명을 쐬며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것은 물론, 해외여행과 야간 근무, 야식 등으로 생체리듬을 깨뜨리기 일쑤다.

예를 들어 수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호르몬인 멜라토민은 생체리듬을 조절하고 체온을 낮춰 우리 몸이 밤에 잠들게 해 준다. 빛의 밝기가 150LUX 이하의 경우 분비되면서 수면을 유도하는데, 저녁시간에도 밝은 불을 켜놓으면 분비가 억제되기 때문에 불면증이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막연하게만 생각해 오던 일/월주기와 인간생리의 관계에 대해 시간생물학은 확실한 메커니즘을 제시해 준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수면장애, 피로, 비만, 우울증 같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문제는 물론, 암, 당뇨, 심장마비 등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질환들마저 대부분 생체리듬과 관련됐다는 연구결과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국제암연구소(IARC)의 연구에 따르면 간호사, 경찰 등 교대근무가 잦은 직업군이 그렇지 않은 직업군에 비해 암에 걸릴 위험도가 1.48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 어떤 명약과 획기적인 치료도 예방만 못하다. 제 때 자고 제 때 먹는 올바른 생활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이 증명하고 있다.

글: 김청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