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시간을 거스르는 물질 '자가치유소재'

정용채 KIST 다기능구조용복합소재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정용채 KIST 다기능구조용복합소재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고 죽지만 한편으론 영원불멸을 꿈꾸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끊임없이 삶의 질을 개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이 이루고자 하는 궁극의 꿈이 생명 연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예로 중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진시황은 그의 생이 끝날 때까지 불로불사를 염원하고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렇듯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생명 연장에 많은 노력을 해 왔으며, 현대 의료와 과학 기술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크게 늘린 동시에 삶의 질도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최근 이러한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산업 분야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화기는 과거 단순히 통신 수단만으로 사용되던 개념에서 지금은 바쁜 현대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정보를 습득하며 가공하는 등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 휴대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가격이 워낙 비싸며, 손상되면 그에 상응하는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다. 사람들은 내구성이 우수한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수리를 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구매할 때 발생하는 시간·금전 소모는 바쁜 현대인에게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요즘 누구나 한번쯤은 공감이 되는 이슈다.

만약 디자인, 경량성, 고강성과 함께 항상 새 제품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이상형의 소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 보라. 이러한 사회 및 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온 기술이 바로 '자가 치유 소재 기술'이다.

'자가 치유' 또는 '자가 복원' 소재가 외부의 다양한 환경에 의해 손상을 받으면 스스로 결함을 감지하고 능동 복구(복원)가 되는 특성이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는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이상형이지만 현재 기술은 일정 수준의 소재 물성 회복과 수명을 연장하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자가 치유 소재 기술은 2013년 2월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이 뽑은 떠오르는 10대 유망 기술의 하나로 선정될 정도로 범국가 차원의 관심도가 높다. 국내는 물론 최근 세계 여러 대학, 연구소, 기업이 기술을 발전시켰다. 건축, 자동차, 우주항공, 의료, 헬스케어 등으로 폭 넓게 응용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북분원 복합소재기술연구소도 자가 치유 기술에 관해 원천 소재 개발부터 첨단 복합 소재로의 응용까지 다양하고 폭 넓은 범위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대표 사례로 상온에서 수분 이내에 손상 및 물성을 능동 복원하는 자가 복원 형상기억 고분자 소재, 기능성 외장 소재 및 액추에이터 연구, 홍합접착단백질을 이용한 자가 복원 바이오센서 연구, 마이크로캡슐을 기반으로 하는 자가 복원 고전압 송전 케이블 및 접속함 개발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 연구진은 기존의 자가 치유 기술 단점을 극복하고 미래 지향의 소재 개척을 위해 자율 수명 제어라는 새로운 소재 개념을 제안, 실현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자율 수명 제어란 소재가 환경 스트레스 및 손상과 마모에 대한 응답으로 자율 기능으로 보호, 진단, 치유할 수 있는 생체 시스템 기능을 모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재의 수명, 안정성 및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신소재 기술 개념이다.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주인공 마코토에게는 타임리프라는 시간을 '달려서' 과거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으로 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려서 자신의 미래를 바꾼다.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사물이 시간을 역행해서 미래를 바꿀 수 없지만 내구성과 사용 시간을 늘릴 수 있게 한다면 비용 절감은 물론 사회·환경 측면에서도 장점이 될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해 사물 역시 시간이란 유한한 개념이다. 자가 치유 소재 기술은 시간을 역행하는 새로운 기술이 될 것이다.

정용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다기능구조용복합소재연구센터 선임연구원 ycjung@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