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가입할 자유, 해지할 권리

[특별기고]가입할 자유, 해지할 권리

특정 통신 서비스에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차례 걸려 온다. 사용하고 있는 통신사를 바꾸면 경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용자가 통신사나 서비스를 선택할 '가입 자유'는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해지할 경우 입장이 정반대로 바뀐다. 해지 신청을 위한 전화 연결도 어렵고, 연결되더라도 이용자가 하소연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빠, 나 오늘도 콜 수 못 채웠어.” 올해 초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 나간 여고생이 자살 직전에 아버지에게 남긴 휴대폰 메시지다. 이 여고생은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하면서 이용자가 해지를 못하도록 방어해야 하는 실적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 상황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안타까운 사건 배경에는 일부 통신사의 과도한 해지 방어 행위가 있다.

통신사는 상담원의 해지 방어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한다. 대다수 상담원의 월정 급여는 낮고 반대로 인센티브가 높아서 일정 수준의 월급을 받기 위해 상담원은 해지 방어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상담원은 욕설·폭언·성희롱 등 감정 노동자 대부분이 겪는 스트레스 이외에도 해지 방어 실적 채우기, 과도한 성과급 차별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겪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상 영업 활동에 기반을 둔 실적 경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보편 서비스 성격이 짙은 통신 서비스의 이용에서 과도한 상담원 성과주의가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해지 방어 행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용자가 해지 신청을 했음에도 실적 압박을 느끼는 상담원이 해지 처리를 하지 않고 오히려 해지 철회를 요구하거나 재약정을 유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때로는 해지를 접수하지 않고 다른 상담원에게 떠넘기는 방법으로 지연시키기도 하며, 해지 접수 예약을 거부하는가 하면 심지어 이미 타 사업자의 서비스에 신규 가입한 이용자에게 신규 가입 해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사업자의 과도한 해지 방어로 인한 이용자 피해 형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해지를 거부·지연·누락했음에도 이들 해당 기간의 요금을 부과함으로써 경제 피해가 발생한다. 해지 처리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타사 서비스에 가입한 이용자에게 수차례 전화해 타사 가입의 해지 철회를 유도하는 행위는 이용자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선택권을 방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심지어 장비 철거를 지연함으로써 이용자에게 훼손이나 망실에 대한 심리 부담 등 정신 피해를 주기도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 서비스 이용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주무 기관으로서 얼마 전 통신사가 이용 계약 해지를 거부·지연하거나 제한하는 행위 등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발표한 제4기 방송통신위원회 10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지능정보사회의 이용자 보호 강화'를 선정, 통신 서비스 가입 및 해지 절차를 개선하는 등 이용자의 자유로운 서비스 선택권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통신사 영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용자 대상의 과도한 해지 방어 행위는 이용자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 통신 서비스는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와 달리 정부로부터 제한된 주파수와 사업권을 허가받은 사업자만이 제공하는 대표 공공 서비스다. 공공성과 공익성 추구는 사업자의 중요한 의무다. 통신 사업의 자유는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kossgo@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