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곤(鯤)과 붕(鵬), 그리고 2017년

'큰 새가 먼 길을 가듯이.'

김재홍 KOTRA 사장이 공조직 생활 35년을 돌아보며 펴낸 책의 제목이다. 붕정만리(鵬程萬里)라는 부제가 붙었다.

제목에는 '더 크게 더 멀리 보고,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는 긴 호흡으로 멀리 보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는, 스스로에게 던진 35년의 다짐을 담았다고 한다.

'붕(鵬)'은 길이가 삼천리에 이르고 하루에 9만리를 난다는 전설 속의 큰 새다. 북쪽 바다에 사는 상상의 물고기 '곤(鯤)'이 변한 새다.

곤은 크기가 몇천 리나 된다고 한다. 붕 또한 등의 길이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전해진다. 이 새는 살고 있는 북쪽 바다를 벗어나 끊임없이 남쪽 바다로 날아 가려 한다. 이는 세속의 삶(곤)에서 벗어나 마음의 깨달음을 얻은 상태(붕)로 거듭나서 하늘나라(남쪽 바다)로 가려고 하는 인간을 비유한 이야기다.

인간이 어리석음을 깨닫기 쉽지 않듯 곤이 붕으로 변하는 과정 또한 험난하다.

입이 새의 주둥이로 뾰족하게 툭 튀어나오고, 배가 날개로 길게 늘어나서 펼쳐지는 등 몸이 뒤틀리고 휘는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말 그대로 '살을 찢고 뼈를 깎는'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야 비로소 곤은 붕이 된다.

도가(道家)를 대표하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새해 우리나라는 첫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한다.

2006년 2만달러 시대에 진입한 이후 12년 만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는 선진국 진입의 지표로 여겨진다. 대한민국도 선진국 진입의 문턱을 본격 넘어서는 것이다.

최근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 규모가 15년 뒤인 2032년에는 세계 8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12위인 한국 경제는 2022년 캐나다를 밀어내고 10위에 올라선 데 이어 2027년에는 9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5년 뒤 8위가 된다는 얘기다.

세밑에 나온 국내외 관측이 모두 대한민국의 성장을 예측하고 있다. 뿌듯하고 기대된다.

그러나 문득 커지는 경제 규모만큼 '나는 행복할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또 우리 사회는 그만큼 성장했는지도 의문이 든다.

문재인 정부가 새해 경제 정책 방향에서 '국민의 삶'도 그에 맞게 나아져야 한다고 강조한 점을 보면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단순히 경제 규모나 국민소득이 커진다고 해서 우리가 겪는 정치, 사회,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의 문제가 자동 개선이 되지는 않는다.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 다른 대한민국이 필요하다.

곤이 붕으로 되기 위해 살이 찢기고 뼈가 뒤틀리는 고통을 겪었듯 개인이나 국가의 성장에도 그런 고통이 수반된다. '더 크게 더 멀리 보면' 다사다난한 2017년 한 해도 그런 과정의 하나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역사의 큰 획으로 남게 될지 모르겠다.

2018년 새해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겪은 모든 일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진통이었기를, 희망이 넘치는 무술년(戊戌年)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