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관 손잡고 해외 기술규제 파고 넘자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이 5700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세계를 휩쓰는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걱정이 앞선다. 최근 미국 정부가 한국산 철강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세탁기에 세이프가드 조치 권고안을 발표했다.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도 반덤핑, 상계관세 등 수입 규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증, 품질 규제 등 기술 요건을 앞세운 무역기술장벽(TBT)이 우리 기업에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기술 규제는 환경, 안전 등 공익 목적을 위해 각국이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다. 그러나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기술 규제는 무역 원활화에 장애로 작용한다. 어떤 나라는 우리 자동차 업계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수준의 배기가스 규제를 지방정부별로 도입했다. 가전업계에 미처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에어컨 냉매 규제를 전격 시행한 나라도 있었다. 중남미에 일회용 포장 용기를 수출한 중소기업은 급작스런 품질 규제로 거래 중단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문제는 각국의 기술 규제가 큰 폭으로 늘고 국제 관계로도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된 기술 규제는 2336건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지난해에는 2580건을 넘으면서 또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과거 선진국 중심 기술 규제가 개도국으로 확산되면서 전체의 70% 이상을 개도국이 차지하는 등 기술 규제는 세계 추세가 되고 있다. 전통의 품질·안전 규제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 타이어 효율, 물 소비 효율 등 나라별 규제도 다양한 형태로 신설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기술 규제 대응을 위해 업종별 협·단체, 전문기관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정부 간 협상 및 기업 지원을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에는 2700여건의 기술 규제를 조사·분석해 전파했고, 외국 정부와 협상해 45건의 장애를 해소하는 성과도 거뒀다. 그렇지만 복잡·다양해지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기술 규제를 극복하기 위해 '심모원려(深謀遠慮)' 관점에서 체계화한 전략을 마련, 대응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민·관 협력 체제를 공고히 하고 기업 지원을 확대하는 등 세 가지 방향으로 대응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첫째 체제를 정비해서 TBT 대응 지원 컨트롤타워 기능을 확립한다. 해외 규제 관련 정보 수집 체계화를 위해 국가기술표준원, 표준협회, 시험인증기관 등이 참여하는 공동 대응센터를 설치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기업 지원을 위한 구심체 역할을 담당, 수출 기업이 좀 더 쉽게 어려움을 상담하고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둘째 '숨은 규제' 발굴과 함께 기업과 유관 기관 간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한다. 숨은 규제는 미리 준비하거나 대처하기가 어려운 속수무책의 복병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수출 대상국 규제 기관의 제도를 상시 모니터링해서 숨은 규제를 적극 발굴할 생각이다. KOTRA 무역관, 수출 기업의 현지 지·상사 등과 현지 네트워크를 공동 구축, 대응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셋째 중소 수출 기업의 피부에 와 닿는 실질 지원도 한다. 중소기업이 제기한 규제의 심층 조사·분석과 아울러 규제 원문 번역, 분석 결과도 제공할 방침이다. 전문가가 직접 중소기업에 방문해 애로 사항을 해소시켜 주는 현장 컨설팅도 확대한다. 해외인증 취득 사업, 기술개발(R&D) 지원 사업도 연계해 기술 장벽 극복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총성 없는 전쟁터인 세계 시장에서 우리가 지속 성장과 수출 증대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해외 기술 규제 파고를 헤쳐 나가는 민·관 협력이 절실하다. 기업은 기본으로 기술 개발을 통한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고, 유관기관은 해외 규제 정보 수집·분석 및 시장 개척 지원에 매진해야 한다.

정부는 해외 기술 규제가 우리 수출 기업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대응 체제 마련과 함께 대외 협상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난해 어렵게 회복한 무역 1조달러 달성과 수출 성장세가 유지될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 보호무역주의 파고를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inhojj@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