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집단자살' 사회의 출구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수년 전 인력 자원 분야의 세계 석학 초청 워크숍에서 미국 하버드대 리처드 프리먼 교수가 문득 일어나서 자리를 돌아다니다가 말했다.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것들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미래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요인은 '아이(baby)'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겨 가는 초저출산 사회에 닥쳐올 어려움을 우려한 것이다.

지난해 10월에 방한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을 '집단자살' 사회로 표현했다. 결혼과 출산 기피로 인한 인구 구조 고령화가 성장률 하락 및 재정 악화를 가져와 결혼 및 출산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상황을 '함께 죽어 가는 사회'로 묘사한 것이다.

이처럼 저출산이 성장 저해 요인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출산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과거 관 주도로 출산을 억제하던 인구 정책보다도 성공 가능성이 낮다. 2001년 이후 지금까지 합계 출산율 1.3% 미만의 초저출산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한국 사회에 응축된 문제들 결과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기 어렵거나 그러고 싶지 않다는 20~30대의 생각이 표출돼 온 것이다.

더욱이 지금 20대는 인구 구조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는 20대 인구가 전년 대비 증가, 청년층의 취업 시장 경쟁 상황이 매우 치열하다. 단군 이래 스펙을 최고로 쌓았다고 하지만 그동안 들여온 노력과 오래 감내해 온 경쟁에 비해 원하는 취업문은 너무 좁고, 주거비는 너무 높다. 취업도 안 되고 돈도 없으니 인간관계가 사치인 것 같고, 뭐든 혼자 하는 청년이 늘어 간다.

이러다보니 미디어에서는 청년들을 일컬어 포기한 것이 많은 'N포'세대라고 불러 왔고, 최근에는 출세나 성공보다 그냥 평범하게 적(당하)게 벌며 살겠다는 '노멀 크러시' 풍조를 보도하고 있다. 버블 붕괴와 저성장으로 '잃은 20년'을 보낸 일본에서 욕망을 줄이고 행복을 찾는 '사토리'(달관) 세대의 출현을 보고하던 것과 유사하다. 한국은 거시 경제 및 인구 구조 변화의 궤적에서 일본을 20년 차이를 두고 따라가고 있다.

출구는 있다. 어둠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 지는 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우리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긴 터널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전후 베이비부머인 '단카이' 세대의 은퇴 이후 청년층 고용 여건이 개선돼 왔고, 인력 수입에 보수성을 보이던 과거와 달리 해외 인력으로 고령 사회의 구인난을 해소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기성 세대와 사회가 청년과 미래 세대를 위해 해야 하는 임무는 지금의 어려움을 잘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몇 가지만 예시하고자 한다.

첫째 부모는 자녀를 들볶지 말고, 양성 평등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선호되는 소수의 대학과 직장을 소수만 차지하는 경쟁 속으로 자녀를 끝까지 내모는 것은 인생을 실패라고 여기는 청년을 대량 생산하게 된다. 또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가 자신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한다.

둘째 교육은 미래 사회에 쓸모가 있는 역량을 길러 줘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빛을 발할 의사소통 및 공감 능력과 복잡한 문제를 협력해서 해결하는 능력을 상호작용이 많은 수평형 수업을 통해 배양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배우는 능력과 즐거움을 체득하게 해야 100세 시대, 인생 다모작 시대를 살아 갈 수 있게 된다.

셋째 사회는 우리 미래인 청소년과 청년 한 명 한 명이 '우리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해야 한다. 게임업체 청년 직원의 돌연사를 초래한 악명 높은 초과 근무, 조기 퇴직을 신규 채용으로 대체하는 정보기술(IT) 업종 등의 소모품성 인력 운용, 특성화고의 현장 실습 사망 사고 등은 아직도 사람이 중한지를 모르는 사회의 단면이다. 또 교사와 교수의 학생 성희롱과 갈취, 학생 주거비 부담을 덜어 줄 대학촌 기숙사 신축에 대한 원룸 임대업자의 반발 등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칠 민망한 갑질과 몰배려도 사라져야 한다.

'집단자살' 사회의 출구는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을 청년 세대가 먼저 볼 수 있도록 기성 세대와 사회가 막아선 길을 터줄 때 열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노후의 오랜 기간을 미래 세대에게 의지해야 할 현세대의 경우 뒤늦게 아주 크게 후회할 것이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저출산고령사회위원) hisamkim@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