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리틀 포레스트' 속 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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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 2018 2월 28일 개봉했다.
<임순례 감독,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 2018 2월 28일 개봉했다.>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쳤기 때문일까. 힐링 영화라 불리는 '리틀 포레스트'가 인기다. 바쁜 일상을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김태리 분)이 농사를 지으며 한 끼 한 끼 만들어 먹는 익숙한 일상을 그렸다.

이 영화는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앞서 일본에서 영화화됐다. 한국판과 달리, 두 편이다. 각각 여름과 가을, 봄과 겨울이란 부제가 붙는다.

일본 도호쿠 산간 지방. 작은 산골 마을 코모리에서의 '사계절'이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계절 특성에 맞는 식재료와 요리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선명하게 대비시켰다. 봄나물로 만든 파스타, 고온다습한 여름 습기를 없애기 위한 스토브로 구운 빵, 가을에 익어 떨어진 밤으로 만든 조림, 겨울 바람으로 얼린 무말랭이 요리를 보면, 어느 샌가 차오르는 귀농 욕구와 허기짐이 몰려온다.

겨울편 무말랭이는 특히 마음을 사로잡는다. 코모리 사람에겐 조림 요리에는 반드시 얼린 무말랭이가 있어야 한단다. 눈이 쌓여 불편하고 추운 산골 생활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다. “추우면 힘들긴 하지만,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도 있다. 추위도 소중한 조미료 중 하나다”라는 명대사처럼 무말랭이는 이들에게 하나의 겨울이고 일상이다.

하지만 이런 당연함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점차 겨울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기상청에 따르면 90년 동안 여름은 지속적으로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지고 있다. 서울 기준으로 1921년부터 1930년까지 여름철 일수는 101일이다. 20도 이상 올라간 뒤 다시 떨어지지 않는 첫날 기준이다. 그런데 2001년~2010년에는 여름이 121일로 늘어났다. 5도 미만이 기준인 겨울 일수는 1920년대 127일이었지만, 2001년~2010년에는 102일로 줄었다.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

역시 원인은 지구 온난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겨울은 더 추워졌다. 지구 전체 기온이 올라가면서 북극 기온도 상승했다. 중위도 지방과의 기온차가 줄어들면서 북극 찬공기를 가두던 제트기류가 약해졌다. 이에 북극의 찬공기가 아래쪽으로 대거 내려온 게 '북극한파'다. 우리나라와 일본 일대를 뒤덮은 이 맹추위가 봄·가을을 잊게 만든다고 한다. 기상 전문가는 '봄·가을이 짧아졌다'는 체감도 여기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짧아진 건 겨울 뿐이다.

체감이든 실제로든 당연하게 생각한 사계절이 점점 희미해지는 건 분명하다.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에 진입을 시작했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나온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는 소중함도 점점 빛이 바래는 듯하다. 얼린 무말랭이 같은 소중함이다. 아직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우리나라에서 제작할 수 있음에 감사히 여길 뿐이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