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작 '블록체인']<2>'21세기 집단지성'에서 '튤립 버블' 논란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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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이 21세기를 바꿀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이다. 집단지성으로 태어난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 기술은 '21세기 튤립 버블' 논란을 거쳐 디지털 시대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 위변조가 불가능한 분산장부

블록체인이 주목받는 것은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수십 년 동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지적돼 온 '비잔틴 장군의 딜레마'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비잔틴 장군의 딜레마는 다른 말로 '개인 간 거래(P2P: peer-to-peer network)'의 한계를 의미한다. 서로 믿을 수 없는 비잔틴 시대 장군들처럼 인터넷에서 개인도 서로 신뢰할 수 없는 거래의 참여자다.

이때 제3의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 타인 간 거래를 장부에 저장하고 보증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인터넷상 '이중지불' 문제를 막는 제3의 기관은 해킹과 오류의 위협에 노출되고, 높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금융 분야에서는 통화 발행 등 제3자의 역할은 중앙은행이 해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등을 겪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마음대로 통제하면서 오히려 화폐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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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2008년 10월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익명의 개발자는 온라인에 하나의 논문을 공개한다. '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기념비적인 이 논문은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다. 비트코인은 P2P버전의 전자화폐로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거래 당사자 간 온라인 대금 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거래에 참여한 네트워크는 '타임스탬핑' 기능을 통해 시간 순서대로 거래를 기록했다. 개인과 개인의 거래가 이뤄지면 새로운 거래 정보를 담은 블록이 만들어지고, 컴퓨터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참여자들이 체인으로 연결된다. 거래에 참여한 컴퓨터들은 암호화된 수학공식을 풀게 되고, 네트워크 보안성을 높이고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대가로 비트코인이 지급된다.

원장은 암호화돼 분산 저장된다. 전체 기록을 바꾸려면 분산된 원장의 절반 이상을 동시에 해킹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인터넷 상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서버-클라이언트 방식이 아닌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가 원장을 공유하고 보관하는 방식이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상에서 모든 참여자는 비트코인의 모든 거래내역을 볼 수 있다.

나카모토 사토시는 2009년 1월 직접 채굴을 통해 가상화폐 개념을 증명해 보인다. 암호화기술과 작업증명을 동원해 새로운 비트코인을 생성하는 것을 채굴이라고 부른다. 이 채굴 때문에 싸이월드의 '도토리'나 신용카드 포인트 등과 비트코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블록체인은 일종의 집단지성이다.

◇가상화폐 논란 일으킨 투기 광풍

나카모토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선보인 이래 비트코인은 초국가적 결제수단으로서 지위를 노렸다. 탄생 초기에는 비트코인은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공유됐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는 원칙적으로 앞서 설명한 채굴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거래소로 불리는 교환업자를 통해 구매가 가능했다. 초기에는 지금처럼 비트코인의 가치가 고공 행진하지도 않았고, 결제수단으로서 받아주는 곳은 극히 드물었다. 더욱이 익명으로 거래에 참여가 가능했기 때문에 자금 세탁 등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처음부터 불거졌다.

2013년 키프로스 사태로 인해 '디지털 금'으로서 가상화폐가 처음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가격의 첫 번째 폭등이다. 하지만 비트코인 거래에 80%를 담당하던 세계 1위 가상화폐거래소인 마운트곡스가 2014년 해킹을 당하고 파산했을 때 가상화폐 전망에 대한 비관론은 절정에 달했다. 2013년 1000달러 선까지 올라갔던 비트코인은 300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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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자 바닥을 쳤던 비트코인 가격은 다시 서서히 살아났다. 중국 등지에서 채굴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가격은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다.

투기 광풍의 신호탄은 사실상 작년 4월 일본에서 자금결제법상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 인정하면서부터다. 일본에서는 가상화폐 교환업자에 대한 등록의무와 행위규제를 부과했다. 이용자가 예탁한 금전이나 가상화폐 등을 분리해서 관리하도록 의무를 제시했다. 이외에도 계좌 개설 시 본인확인의무 등 자금세탁 방지 등의 의무도 포함했다.

일본은 자금 세탁 방지와 이용자 보호를 목적으로 가상화폐 규제를 법제화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가상화폐가 제도권으로 도약했다는 사회적 관심을 불러왔고, 투기 광풍으로 이어졌다. 거래 규모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거래가 늘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고 가상화폐를 이용한 사기, 다단계 등 불법 우려도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일본과 함께 가상화폐 최대 시장이던 중국이 작년 9월부터 모든 형태의 신규화폐공개(ICO, initial public offering)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ICO는 주식시장에서 기업공개(IPO)와 비슷한 개념이다. 새로운 가상화폐를 내놓고 자금을 끌어모으는 일종의 크라우드 펀딩이다. 이미 비트코인은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4000달러 이상 거래되면서 가격이 연초 대비 400% 이상 치솟은 상태였다. 중국은 ICO는 물론이고 가상화폐 거래 자체를 전면 금지했다.

한국 정부도 투기 우려가 높아지면서 9월 29일 ICO를 전면 금지하고, 범부처 차원의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미 8월경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을 통한 하루 가상화폐 거래량이 2조6000억원을 넘기면서 하루 코스닥 거래량을 뛰어넘은 뒤였다.

국내 ICO는 금지됐지만, 투기 광풍은 잡힐 줄 몰랐다. 가상화폐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2월 초 비트코인 가격은 2만달러를 넘어서 연 초 대비 20배 가량 뛰었다. 당시 전 세계 가상화폐 가격은 코인마켓캡 기준 460조원을 넘겼다.

외신도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의 21%를 담당하던 한국을 주목했다. 블룸버그 등은 한국 국내 총생산(GDP)가 전 세계 1.9%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기현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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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거래소를 하겠다고 나온 기업만 12월 초 기준 줄잡아 50여개가 넘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상화폐에 앞 다퉈 투자하는 광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미국에서는 비트코인 등을 기초자산을 한 파생상품 거래가 시작됐지만, 한국 규제당국은 파생상품 거래는 물론이고 가상화폐 전반에 완강한 규제 방침을 밝혔다.

◇각국 정부 “가상화폐는 규제, 블록체인은 육성” 가닥

정부가 전 방위 규제에 나서고도 한동안 가상화폐 가격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비트코인은 물론이고 이른바 '알트코인'으로 불리는 가상화폐 가격들도 여전히 상한가를 기록했다.

정부는 신규 투자자의 무분별한 진입에 따른 투기 과열을 막기 위해 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은행 입출금 과정에서 본인 확인 과정을 강화하고, 이용자 본인 계좌에서만 입출금이 가능하도록 했다. 고교생 이하 미성년자와 외국인(비거주자) 등의 계좌개설 및 거래도 막았다. 또 거래 실명제와 함께 나아가 정부 가상화폐 특별대책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거래소에 대해 퇴출할 수 있다는 방침까지 밝혔다.

시간이 갈수록 가상화폐 가격 상승세는 수그러들었다. 각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방침에 가상화폐 자산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높아졌다. 1월 들어 비트코인 가격은 50% 더 하락한 1만달러 아래까지 추락했다.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 거래를 허용했던 미국 규제당국도 ICO과정의 사기, 부정거래 등을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연방법상 증권으로 해석하며 규제 방침도 명확히 했다.

일본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 사고가 발생했다. 약 580억엔 규모의 '뉴이코노미무브먼트(NEM)' 코인이 도난당했다. 범인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가상화폐 거래소의 허술한 보안관리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업계 전반에 신뢰성이 하락했다.

금융위원회는 1월 2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현장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이 브리핑 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월 2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현장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이 브리핑 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가상화폐 광풍에 각국 정부는 규제 필요성에 공감했다. 극심한 가격 변동성 때문에 사회 혼란을 줄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가능성에 대해 눈 떴다. 투기 광풍과는 별개로 블록체인 기술 육성 방안을 찾고 있다.

정순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상화폐가 긍정과 부정, 양 극단의 평가를 오간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가상화폐는 첨단기술의 산물로서 기술과 금융의 결합을 통한 혁신적 지급수단 또는 핀테크 상징물임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지만, 지급결제라는 금융 본래의 기능보다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투기적인 거래를 유도하는 또 하나의 '정체불명의 그 무엇'이라는 평가도 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기반 기술이 되는 블록체인은 기존 중앙집중형 시스템에 비해 효율성, 보안성, 시스템 안정성, 투명성 등에 장점이 있다. 결제수단으로서 지위를 노렸던 비트코인과 달리 '블록체인2.0'으로 불리는 이더리움은 스마트 계약이 가능한 플랫폼으로 다양한 산업적 활용이 가능하다.

2015년 이더리움은 러시아 출신의 천재 개발자 비탈릭 부테린이 개발했다. 그는 이더리움을 스마트폰 안의 플랫폼, 즉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 비유한 바 있다. 이더리움 플랫폼 내에서 가상화폐 단위는 '이더'다. 이더리움에서는 '솔리디티(Solidity)'라는 언어를 사용해 스마트계약을 코드로 넣으면 지정된 조건이 만족됐을 때 계약이 이행되도록 한다.

◇튤립 버블을 넘어, 초연결사회 기반 기술로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1세대를 비트코인으로, 블록체인 2세대를 이더리움으로 정리한다.

디지털 통화로서 비트코인이 중앙은행이 필요 없는 결제수단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이더리움은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초연결사회의 기반 기술로 점쳐지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물이 모두 자동적으로 연결되고 지능적으로 콘트롤되는 시대다. 이런 방식을 과거와 같이 중앙서버로 집중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이용한다면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보안이나 관리 위협도 함께 높아진다. 여기에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분산 네트워크와 블록체인이다.

한국블록체인협회가 1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진대제 초대 한국블록체인협회장(앞줄 왼쪽 네번째)과 전하진 자율규제위원장(〃 다섯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가 1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진대제 초대 한국블록체인협회장(앞줄 왼쪽 네번째)과 전하진 자율규제위원장(〃 다섯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가상화폐 규제에 대해 온도차가 심한 각국 정부들도 블록체인 기술 활용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또 가상화폐 변동성과 별개로 산업계에서는 블록체인 기술 관련 연구개발(R&D)과 합종연횡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현재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방향은 크게 △퍼블릭 블록체인 △프라이빗 블록체인 △컨소시엄 형태로 정리된다. 비트코인처럼 모든 거래 참여자가 동등하며 거래내역을 공유할 수 있는 분산장부가 있는 반면, 특정 참여자들에게만 공유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도 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퍼블릭 블록체인이 모든 거래 참여자가 네트워크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거래 체결에 시간이 걸리고 확장이 어려운 단점을 개선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블록체인이라면 중앙기관이 없다고 여겨지지만,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는 거래를 주도하는 중앙기관이 존재한다. 새로 나온 알트코인 중에서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형태로 발행되는 것들도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과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중간 형태도 있다. 허가받은 사용자만 참여할 수 있으며, 컨소시엄 참여자에 따라 규칙을 바꿀 수 있다. 현재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추진하는 블록체인이 이런 컨소시엄형 블록체인인 경우가 많다.

가상화폐는 여전히 변동성이 매우 큰 투자자산이다. 하루아침에 자산가치가 '제로(0)'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각국의 실험과 기업 시도도 대부분 실패할 수 있다. 이미 지난해 ICO 중 절반은 실패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온다.

김열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많은 인터넷 기업이 닷컴버블 이후 사라졌듯 수많은 블록체인 기업도 험난한 생존 경쟁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막연한 낙관이나 비관은 불필요하다. 변화가 무섭도록 빠르기는 하지만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라고 밝혔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