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악플과 선플 사이

30년 전 여의도 광장은 선거 판세를 읽는 가늠자였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광장을 찾은 지지자 숫자는 대세를 읽는 지표 가운데 하나였다. 인터넷과 온라인이 발달되지 않은 당시 대다수 국민들은 TV 9시 뉴스 창을 통해 여의도 광장을 바라봤다. 그러한 세몰이 공간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온라인과 모바일 세상으로 옮아 왔다. 인터넷은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여론 마당으로 떠올랐다. 해외에서도 인터넷과 SNS에 친숙한 버락 오바마(미국), 니콜라 사르코지(프랑스) 등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언젠가부터 기사보다 댓글을 읽는 시간이 점점 늘었다. 팩트 위주 기사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무수한 타인의 반응과 생각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댓글은 내가 아닌 대중의 생각을 확인하는 통로다. 순수한 선플은 인터넷 산업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제대로 운영된다면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모두 충족시켜 주는 기제다. 어느 순간 여론을 형성시키고, 의제를 설정하는 통로로 활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선수(?)들이 개입할 때 발생한다. 이른바 정치꾼들에게 댓글은 좋은 왜곡 수단이다. 댓글 프레임은 어젠더 설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특정 세력이 가세하면 정치 행동주의 도구로 전락한다. 댓글부대는 주식 시장에서의 작전세력과 유사하다. 시세 조작과 같은 여론 조작을 일으키고, 민심 왜곡을 부를 수 있다. 정치 현상과 행위에 대한 일반인들 인식이 왜곡될 개연성이 커진다. 호랑이를 토끼로 둔갑시키는 것도 시간문제다. 호랑이를 토끼로 부르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면 다수의 일반인은 갸우뚱하게 된다.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에 길들여진다. 유행하는 대중 상품을 따라 소비하려는 현상이 댓글 소비 과정에 적용된다. 독자는 서서히 댓글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손'의 노예가 된다. 조직화된 세력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 이른바 악성댓글 공격에 일부 소수는 침묵의 나선 속으로 빠져든다. 홀로 고립되거나 사이버 왕따가 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개방, 참여, 공유.' 인터넷의 본질이자 속성이다. 다수의 대중이 의견을 자발 개진하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는 온라인 상 플랫폼이다. 지금까지 3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온 중요한 발명품이자 직접 민주주의를 한 단계 고도화시키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온라인 여론 조작은 이 같은 직접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다. 특정인에 대한 조직 차원의 계획된 악플은 규제를 동반한다.

드루킹 사건은 외부 요인으로 말미암아 여론 형성 시장이 실패한 사례다. 경제 금융 분야의 경우 대체로 시장 실패는 정부 개입을 부른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시장 정상화 논리를 앞세워 규제를 들이댄다. 네이버, 카카오 등 양대 포털 사업자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특히 모든 사건사고에 대해 '기·승·전·네이버'로 결론짓는 것은 무리다. 악성 댓글을 이용한 여론 조작은 해킹과 같은 창과 방패 싸움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포털 책임론을 꺼내기보다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댓글 정책 재설계가 필요하다.

드루킹 사건을 계기로 우리 인터넷 문화와 기술이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 자발에 따른 '착한' 댓글은 더욱 장려돼야 한다. 다만 여론 왜곡을 낳는 조직화된 악플 근절을 위한 사회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회는 악성 댓글에 대한 범죄 예방 효과가 있도록 입법상의 미비점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민간 포털 사업자도 더욱 면밀한 보완책을 고민해야 한다. 차명 아이디 거래 차단과 댓글 배치 순서 정책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인터넷 항해가 좌초되지 않도록 선플과 악플 사이의 평형수를 마련해 보자.

[데스크라인]악플과 선플 사이

김원석 성장기업부 데스크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