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비상]〈1〉중소 제조업 엑소더스 오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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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의 개정 취지는 이번 정부가 강조하는 '일과 삶의 균형' 실현에 있다. 우리나라 장시간 근로문제를 해결하고 휴일을 확대해 국민 삶을 나아지게 하는 동시에 고용률 확대 등 긍정적인 효과가 목적이다. 하지만 정작 개정안 당사자인 산업계와 근로자는 우려가 많다. 근로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제한됐다는 점이 가장 큰 불편함이다.

1년 365일 항상 같은 일을 같은 강도로 하는 직종은 많지 않다. 때문에 '야근'이라 불리는 연장근무가 존재한다. 근로자는 이를 통해 평시보다 높은 대가를 받는다.

지난 2월 확정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이와 같은 시기별 근무 강도 변동성을 상당 부문 간과하고 있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나타난 16시간 차이(주 68시간→52시간)는 업종, 기업 상황에 따라 체감도가 달라진다.

업종 특성상 근로시간과 근무강도가 높고 이를 유동적으로 조정하기 힘든 분야일수록 개정안에 큰 부담을 느낀다. 섬유, 뿌리(주조·금형·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 자동차부품, 조선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근로시간 단축과 추가 고용 등에 대한 고민이 크다.

섬유·뿌리·자동차 부품은 작업량, 인력확보 현황, 장시간근로 관행 등으로 절대적인 근로시간과 근무강도가 높다. 대부분이 주야 2조 2교대로 운영된다. 주문제작·수주 생산비중이 높아 근무강도를 자발적으로 조정하기가 어렵다. 동종업종 내 경쟁력이 납기단축 여부에 판가름 난다. 상시 근무가 필요하고 근무시간을 특정하기 어렵다.

대형 유틸리티 분야 역시 연장근무가 불가피하다. 장비 정기보수기간에는 집중근로를 할 수밖에 없다. 조선 업종도 선박 시운전시 1회에 최소 2박 3일이 소요된다. 대표적인 수주형 생산업종으로 납기를 맞추기 위한 연장근무가 많다.

이들 업종 기업은 단기간 집중근로를 위한 임시직을 구하는 것도 힘들다. 근로자 대부분이 경험을 쌓은 기능직이어서 임시 채용이 쉽지 않다. 이로 인한 제품 품질 리스크도 불안요인이다.

국내 산업의 고질적인 병폐인 중소 제조업 '일자리 미스매칭'도 큰 부담이다. 산업계는 일자리 미스매칭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할 인력운용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구인난·인건비·추가고용 부담 등을 고려하면 어려운 문제다.

오는 7월 개정안 시행을 두 달 여 앞둔 지금도 취업기피, 업황 부진으로 대체인력 확보가 곤란한 상태다.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동화설비 구축 같은 대안을 생각하지만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완성차, 석유화학 업종은 사전계획 생산이 가능하고, 근무교대제가 잘 정착돼 그나마 영향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동일 업종이라도 기업규모와 직종에 따라 경우는 달라진다. 24시간 가동하는 생산라인은 큰 문제가 없지만, 관련 장비를 생산하거나 연구직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영향권에 있다.

국내 산업구조상 대기업은 영향이 적지만, 1차·2차 협력사로 갈수록 개정안 체감도는 커진다. 실제로 개정안과 관련해 대기업은 비교적 기민하게 대응책을 마련 중이지만, 중소기업은 열악한 경영여건과 인식부족 등으로 사전 대비를 못하고 있다. 인력난에 따른 중소기업의 피해는 장기적으로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2차 하도급 서플라이 체인이 무너지면 대기업의 제품 품질과 생산능력도 영향을 받는다.

업계는 시간적 여유와 법령의 '디테일'을 요구하고 있다. 유예기간을 연장하고, 업종 특성에 따른 예외인정 확대,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업계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력난 등 중소 제조업 환경이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제도 운영과 인력난 부문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 업종별 영향 및 대응동향>

자료: 업계 취합

[근로시간 단축 비상]〈1〉중소 제조업 엑소더스 오나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