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 선도국 독일을 가다]신재생 확산했지만 숙제도 여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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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폐기물, 온실가스, 미세먼지 저감 측면에서 기대되지만 전기요금 인상과 전력 계통 안정성 저하 등이 우려된다. 국민에게 에너지 전환의 명확한 비전과 실천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독일은 우리보다 앞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한 대표 사례다. 갈등을 극복하면서 에너지 전환을 이뤄갔다. 독일 현지에서 에너지 전환 정책 현황을 살펴보고 관계자 조언을 들었다.

◇에너지 전환 '퍼스트 무버'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에너지 전환을 논의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대체연료 개발 필요성이 대두됐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에너지 전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독일은 이를 기반으로 2000년 4월 재생에너지법을 발효했다. 독일 재생에너지 보급제도의 중추인 발전차액지원제도(FIT)가 이때 도입됐다. FIT에 힘입어 독일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1999년부터 2005년 사이 5%에서 10%로 상승했다.

독일은 2005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20년까지 3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2009년엔 '에너지 전환' 계획을 담은 '에너지 구상 2010'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공급체계를 바꾸는 내용이다.

독일 에너지정책이 구체화된 것은 2011년이다. 재생에너지 보급과 이에 따른 송전시스템 개선 등을 담은 '에너지패키지법'을 발표했다. 전력망확대촉진법으로 재생에너지 설비가 밀집된 북부와 전력 수요가 쏠린 남부 간 전력연계 문제 해결에 나섰다. 신재생에너지법에는 FIT 지원금 인상안을 담았다.

에너지산업법은 송전시스템 세분화 조항과 모든 전력망사업자(TSO)가 전력망 구축 공동계획을 수립할 의무를 부여했다.

독일 재생에너지 보급률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독일 프라운호퍼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7년까지 독일 풍력 설비용량은 10GW에서 51GW로 증가했다. 태양광 설비는 300㎿에서 43GW로 14배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원자력발전 설비는 22.4GW에서 10.8GW로 감소했다.

2017년 독일의 총 발전설비 용량은 200GW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풍력, 태양광 설비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국민 '긍정 평가' 속 새 시장도 열려

에너지 전환에 대한 독일 국민 만족도는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해 포츠담 지속가능연구원(IASS)이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5%가 '에너지 전환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산업계 인식도 개선됐다. 건설업종을 포함한 일부 업종의 에너지 전환 인식이 긍정적으로 개선됐고 제조업의 부정적 인식 또한 감소했다.

독일 에너지정책연구기관 클린에너지와이어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빠르게 인상됐지만 그에 대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적다”면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재생에너지 사업 등에 참여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전력 거래 시장도 열렸다.

독일은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원 증가로 계통 안정성이 저하되는 문제를 맞았다. 송배전망 증설이 지연되면 기존 계통의 부하가 높아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에너지 프로슈머'가 관심을 받는다. 발전사업자가 직접 전력을 인근 지역 수요처에 공급해 계통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독일은 P2P 거래 허용 등 소비자의 전력생산, 거래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블록체인 기반 전력거래 시스템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다수 에너지기업이 스타트업과 함께 블록체인 솔루션을 검증하고 있다.

현재 규제 시스템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때 발생하는 사용자의 개인정보 관련 권한과 블록체인 기술 간 출동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일반 계약법, 데이터 보호-IT보안법, 에너지법의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됐다.

◇여전히 남은 숙제

독일 재생에너지 보급정책은 문제점도 야기했다. 계통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크게 늘어났지만 님비(NIMBY) 등으로 송배전 증설이 늦어지면서 계통관리비용이 상승했다.

전기요금 인상폭도 만만치 많다. 독일은 전력회사가 구입하는 재생에너지 전력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해 소비자에게 전가했다. 독일 연방에너지·수(水)경제협회(BDEW)에 따르면 연간 3500㎾h 전력을 사용하는 가정이 지불하는 평균 전기요금은 2006년 19.46ct(유로센트)/㎾h에서 지난해 29.42ct/㎾h로 증가했다. ㎾h당 약 400원 전기요금을 지불하는 셈이다. 이는 우리나라 가정용 요금 대비 4배 정도 비싸다. 전체 전기요금의 30% 이상이 재생에너지에 들어간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미흡하다. 2008년 이후 이산화탄소 감축량은 연간 9억톤 수준에서 정체됐다. 독일의 화력발전 연료 가운데 갈탄 비중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갈탄 발전량은 1990년대 연간 175TWh에서 지난해 147.5TWh로 소폭 감소하는데 그쳤다.

독일 정부 계획과 달리 에너지 전환이 수송, 열 부분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하지도 못했다. 독일 환경연구소 펠릭스 메튜스 박사는 “갈탄 생산으로 경제를 유지하는 지역에 대한 보상 문제, 대체 산업 육성 계획 등이 마련되지 않았다”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돼야 갈탄 사용량을 단계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발전 분야 에너지전환은 전기요금으로 가능했지만 수송, 열 부분으로 확대하기에는 부족하다”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에너지 전환을 이뤄내기 위한 파이낸싱 방안 또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를린(독일)=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