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과학기술혁신의 도구, 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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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중성자과학연구센터장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중성자과학연구센터장>

리처드 파인만은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유명한 천재 물리학자로 불린다. 그는 양자전자역학을 정립한 공로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나노머신, 양자컴퓨터 등 개념을 최초로 고안했다. 그는 위대한 교육자이기도 했는데, 그가 쓴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물리학 애독서로 남아있다. 파인만은 인류 가장 중요한 지식으로 '원자론'을 꼽았다. 만약 어떤 대재앙에 의해 모든 과학 지식이 파괴되고 단 한 문장만이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의 답은 “모든 것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원자론은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에서 시작했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세상 모든 것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자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입증할 방법도 없었고 그 당시로서는 실용성도 없었던 이 주장은 오랜 세월 잊혀졌다. 원자론이 되살아난 것은 본격적인 과학 시대가 열리고 나서였다. 19세기 영국 돌턴이 근대적인 원자론 첫 주창자로, 그는 화학 반응은 원자와 원자 결합이 바뀌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러시아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들면서 화학에서는 원자 개념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후 원자론에 기대 화학을 비롯한 과학기술, 그리고 인류 문명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자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자연을 깊이 이해하고 새로운 물질과 도구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쓰고, 사는 방식이 현격하게 달라졌다. 파인만이 원자론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물리학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자도 알고 보니 더 작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와 원자핵이 차례로 발견됐고, 원자핵도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 이상 원자는 쪼갤 수 없는 물질 최소 단위가 아니게 됐다. 이와 같은 발견은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원자에 대한 이해는 더 깊어졌으며, 과학자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라는 새로운 도구를 갖게 됐다.

이 세 가지 입자 중에서 '중성자'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물질 내부에 깊이 들어가고, 규칙적으로 배열한 원자에 의해 특정 각도로 반사하는 성질은 엑스선과 유사하다. 여기에 더해 자석에 반응하고, 동위원소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며, 원자의 운동에 민감하기 때문에 엑스선과 함께 물질 연구의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로 사용돼 왔다.

다만 대학 실험실 수준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엑스선과 달리 중성자는 원자핵이 깨지는 과정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에 다량 중성자를 얻기 위한 연구용 원자로와 같은 대형연구시설이 필요하다. 프랑스 그레노블, 독일 뮌헨, 호주 시드니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가 대표 시설로 우리나라에서는 대전에 위치한 하나로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웃나라 중국이나 일본처럼 중성자 연구시설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하나로가 장기간 정지하게 되면 과학자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지곤 한다.

원자론으로부터 시작한 기술혁명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금속 재료 발전으로 로켓 엔진을 3D 프린팅 기술로 찍어내는 시대가 됐고, 반도체 발전은 인공지능 개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파인만이 예견했던 나노머신, 양자컴퓨터도 점점 실용화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면서 물질 연구를 위해 원자 단위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로서 중성자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성자를 이용한 연구가 더욱 확대되기를 희망한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중성자과학연구센터장 jmspark@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