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황종권 시인 시집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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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종권은 외모만 보자면 무사에 가깝다. 짙은 눈썹에다 1m87은 돼 보이는 큰 키, 떡벌어진 어깨는 몸 깊숙이 새겨져 있음직한 무골의 DNA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그는 합기도와 킥복싱, 유도 등 각종 무술에 능하다. 유도대회에 참가하고 있고, 앞으로 희망중 하나가 다른 형태의 격투기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감수성 짙은 시를 쓴다는 게 쉬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시인(詩人)이다.

201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가 최근 첫 번째 시집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천년의 시작)를 펴냈다.

[신간]황종권 시인 시집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억압과 소외, 이로부터 발생하는 공포와 두려움을 예리한 감각으로 포착해 낸다. 그는 낮은 곳을 지향하는 시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세상과의 수평적 관계를 도모한다. 아울러 안과 밖, 위와 아래의 경계를 명민한 시적 사유로 허물어뜨린다.

'제단에 내리는 비는/상스러운 질문을 받아 적기도 하지만/멸시할 수 없는 징후가 축축해/눈동자에 고이기도 한다...(주술적 비, 42p)

'검은 독백들이 빗금을 치는 밤이다./젖은 이마마다 죽은 구름이 주저앉고, 나는 벙어리 등을 핥는다./혀의 돌기들이 죄다 손톱이었나,점자책 몇 권을 태우고도 칠판 긁는 소리가...(달콤한 독백, 30p)

시인은 그의 시에 비와 같은 하강의 이미지를 자주 출현시켜 이 추락의 공포를 기꺼이 바라봄으로써 삶의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슬픔을 감싸 안는다.

황정산 평론가는 "황종권 시인의 시들은 우리 사회에서 느끼는 두려움의 근원을 보여 준다. 이 쓰러짐의 공포를 낮은 곳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과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수직으로 버티려는 자세의 미학으로 극복하고 있다"라고 평했다.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의 강인한 언어는 상승에 대한 욕망이나 하강에 대한 공포 등을 아우르며,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고 말하고 있다. 황종권 시의 미학은 슬픔을 빛나는 감각의 언어로 지탱하면서 온몸으로 삶을 통과해 나가는 자세에 있다.

'...젖고 싶었다/쏟아지는 제세로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그늘이 불었다가 아예 타들어 가는 자리를/여름이라 불렀다/매미가 죽어, 검은 머리가 마를 때까지/비는 들추기 위해 그늘을 들이켠다...(죽지않는 여름, 52p)

이수명 시인은 "황종권의 시는 굳어져 있는 듯한 세계를 열고 팽창시킨다. 그의 시에서 하늘, 땅, 바다, 허공, 섬, 절벽 같은 세계가 유례없이 가까이 다가와 한꺼번에 작동되기 때문이다. 이에 어우러져 별, 달, 물고기, 꽃, 나무, 구름들이라는, 그리고 당신이라는 존재가 생생하게 들끓는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존재의 무수한 도정, 세계와의 이토록 생생한 충돌이 시를 뜨겁게 만든다"라고 평했다.

'당신은 육지를 떠나기 전이면 뒤뜰에 있는 이팝나무 아래로 불러내곤 했지요. 이팝나무 한 뼘 위를 식칼로 그으며, 그만큼 자라면 온다고 무슨 굳센 다짐처럼 말하곤 했었지요...(중략) 사리와 같은 당신과 나와의 거리에선 빗소리가 쌓이지요. 비가 오는 밤은 달이 이빨 아픈 꿈을 꾸는 건가 봐요. 이팝나무에 빗소리를 그어놓으면 우린 한 뼘 지워질 수 있을는지요.'(이팝나무에 비 내리면, 64p)

류근 시인은 "발자국 없이 수만 리 별자리를 아우르며 그가 변주해 들려주는 감각의 언어들은 깊고 아프고 감미롭다"라고 평했다.   나성률 기자 (nasy23@etnews.com)

시인 황종권. 사진=페이스북 캡처
<시인 황종권. 사진=페이스북 캡처>

◇황종권 시인

1984년 여수 섬달천에서 출생.
201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예술 인력에 선정되어 작품 활동 시작.
안양예술고등학교와 대구경화여자고등학교 시 창작 수업.
제18회 여수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2018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