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품안전정책이 지향해야 할 기본 원칙

허남용 국가기술표준원장
허남용 국가기술표준원장

가습기 살균제로부터 발암물질 함유 생리대, 라돈 침대에 이르기까지 제품 안전 문제가 해마다 발생하면서 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다. 반면에 지난해 사회 이슈가 된 이른바 전안법(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사태는 정부가 제품 안전을 위해 기업, 특히 소상공인에게 과도한 비용을 부담시킨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안전을 위해서는 철저한 관리와 규제가 필요하다'는 소비자 요구와 '지나친 규제는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기업 요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양측의 요구를 원만하게 조화시키고 바람직한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제품 안전에 대한 사회 합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첫째 안전을 모든 제품의 필수 기능으로 인식해야 한다. 제품에서 안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저마다 다르다. 자동차를 구매할 때는 안전성을 중요하게 따지지만 옷을 살 때는 안전을 깊이 생각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소비자는 모든 제품에 디자인과 성능뿐만 아니라 안전 비용이 가격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안전하지 않은 제품은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기능이 결여된 것으로 보고 소비자 스스로 구매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 역시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인식하고 제품 안전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둘째 안전이 혁신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사실 안전과 혁신이 대립되는 개념은 아니다. 자동차의 안전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첨단 센서, 그래픽 처리 시스템 등 기술 혁신을 촉발시킨 것이 그 예다. 다만 과도한 안전 규제는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 19세기 말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할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자. 안전 기준이 만들어진 다음 안전 기준에 적합한지 확인한 후 백열전구가 출시된 것이 아니다. 모든 제품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따라 안전성을 검증한 뒤 제품을 팔게 하는 시스템은 현실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셋째 안전 규제를 만들 때에는 순응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에게만 있는 이른바 '갈라파고스 규제'는 비효율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내수와 수출 제품을 만들어서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규제 내용과 수준을 국제 규범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새로운 규제를 내놓을 때는 과연 지켜질 수 있는 규제인지 지키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이 과도하지는 않은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넷째 안전 정보는 신속하고 체계를 갖춰 유통시켜야 한다. 제품 위해성 정보는 비대칭 경우가 많다. 기업은 자기 제품 안전성을 잘 알고 있지만 소비자는 그렇지 않다. 기업이 자기에게 불리한 정보를 스스로 제공하길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부와 소비자단체가 주도해야 한다. 안전성이 검증된 제품에 KC마크를 붙이게 하고, 안전성이 결여된 제품은 적발해서 공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최근 정부의 제품 안전 정책은 이러한 일련의 원칙과 부합하도록 설계됐다. 안전성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제품은 기업이 그 사실을 소비자에게 반드시 알리도록 리콜제도를 개선했다. 올 하반기에 설립 예정인 '제품안전관리원'은 출시된 제품의 안전성을 모니터링하고, 안전 관련 정보를 수집·처리·유통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7월 1일 시행되는 개정 전안법은 정부와 업계, 소비자단체, 국회가 사회 합의를 통해 소상공인의 규제 순응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혁신 융·복합 신제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올 것이다. 소비자 안전 니즈는 그만큼 커지지만 기업의 관련 투자는 그에 미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대립되는 이해를 합리 조정하여 소비자에게는 안전, 기업에는 혁신을 각각 가져다주기 위해 앞에서 설명한 원칙을 수시로 되새겨야 한다.

허남용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장 nyher@kats.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