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7>R&D 전담 기관, 혁신이 관건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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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2066억원 늘어난 약 19조6681억원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2016년부터 3년째 19조원대에 머무는 셈이다. 2012년에 12조원을 넘어선 후 2010년 13조원, 2011년 14조원, 2012년 16조원, 2014년 17조원, 2015년 18조원을 넘어서는 등 무섭게 증액돼 온 것에 비하면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런 변화의 원인에 우리 경제의 둔화된 성장세나 실업률 증가, 복지 수요 증대라는 환경 요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R&D 투자 성과가 기대만 못하다는 사회 인식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연구 성과의 외형 증가에 비해 내실 성과가 그만 못하다는 점잖은 설명 뒤엔 내놓을 게 마땅치 않다는 고민이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17개 연구 관리 전담 기관 혁신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수치로 보면 이들이 지난해에 관리한 예산은 11조1724억원으로 국가 R&D 예산의 57%를 넘어선다. 어찌 보면 이들의 연구 관리 역량에 국가 R&D 성과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이들 기관이 통폐합보다는 내실화로 방향을 잡아 가고 있고, 공석이던 기관장도 임명되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 가고 있다는 소식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혁신이 시급하다고 보는 전문가 생각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이들 전담기관의 늘어난 예산만큼 정작 기획 역량은 내실화되지 못하다는 점이다. 신규 사업 기획이나 예비타당성 조사를 외부기관에 의뢰하던 관행이 R&D 일몰제가 본격화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주된 설립 목적이 국가 R&D 사업의 기획·평가·관리에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기술 변화를 쫒아가기 어렵고 실무 어려움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해서 어떻게 전문성을 축적하고, 앞으로 이들 기관의 혁신이 무엇을 목표로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이런 관행이 있었다면 이제 재고해 볼 때가 됐다. 과학기술혁신본부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전담 기관마다 나름의 사업 정체성도 찾아야 하겠다. R&D 사업이 유사한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겠지만 기술상의 난제를 돌파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업이나 사회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어중간한 영역에 태반의 R&D가 매몰되어 있으면서 놀라운 성과를 기대한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기관 운영 자율성도 관건이다. 정부가 바뀐 후 몇몇 공공기관장이 자리를 바꾸는 과정에서 구설수에 오를 일은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자리 보전의 법칙'이라는 것이 생겼다고 한다. R&D 전담 기관만큼은 이래서는 안 된다. 정체된 기관의 전문성을 회복시키고 켜켜이 쌓인 묶은 관계와 관행을 정리할 일이 남았다.

정부도 팔짱 끼고 관망만 할 일이 아니다. 뒷짐 진 기관장이 없으려면 혁신을 독려하는 기관장에게 그만큼 더 많은 권한과 시간을 준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 줘야 한다.

전담 기관 혁신 없이는 국가 R&D 혁신도 없다. 무엇보다 기획평가 관리에서만큼 누구 못지 않은 전문성을 쌓아 가야 한다. 각 기관이 맡은 기술과 산업의 문제를 분명히 알고, 그에 맞춰 사업을 차별화 및 특성화해 나가야 한다.

더더욱이 판에 박힌 일상과 '루틴'에 빠져서는 안된다. 이들 전담 기관에 필요한 단 하나의 루틴이 있다면 그것은 국가 R&D 사업을 기획하고 평가하고 관리하는 과정을 매번 다시 점검하고 혁신한다는 것뿐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실상 이들이 국가 R&D의 최고혁신책임자이기 때문이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