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팔 비틀기'보다 '옆구리 찌르기'

[데스크라인]'팔 비틀기'보다 '옆구리 찌르기'

하루 종일 무더위와 싸웠다. 네이버 상단에 '111년 만의 최악 폭염…서울 40도 육박'이라는 날씨 기사가 걸렸다. 그 기사 아래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이 눈길을 끌었다.

'저 인생이 너무 외롭고 버거워서 그런데요. 오늘 하루만 이 댓글에 추천 좀 많이 눌러 주시면 안 될까요? 다들 한 번만 부탁드려요….'

몇 시간 후 이 댓글 '좋아요' 클릭 수는 2만개를 돌파했다. 답글도 700개가 넘었다. '힘내세요' '파이팅' '꼭 좋은 날 올 거예요' 등 격려성 답글이 꼬리를 물었다. 사람 심리가 묘하다. 격하게 공감하면 행동으로 옮긴다. 더위와 업무에 지쳐 있던 필자도 댓글 창에 이렇게 적었다. '힘내세요. 파이팅!!!'

20세기 이후 행동주의 심리학 연구가 활발하다. 사람 심리가 태도와 행동에 미치는 수많은 실증 연구가 이어졌다. 경제학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경제 주체 심리가 소비와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여러 차례 증명되기도 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은 비주류로 분류돼 온 행동주의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에게 돌아갔다. 그는 '너지'라는 책으로 유명을 떨쳤다.

너지는 '옆구리(nudge)를 슬쩍 찌른다'는 뜻이다. 강요하지 않아도 유연하게 개입함으로써 의도된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남자 소변기 중앙에 파리 그림을 그려 놓았더니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 양이 80%나 준 사례가 종종 소개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장난감이 든 투명 비누를 비치했더니 어린이가 장난감을 가지려고 자주 손을 씻는 등 질병이 크게 줄었다.

[데스크라인]'팔 비틀기'보다 '옆구리 찌르기'

요즘 우리 경제 심리는 어떤가. 지난주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기업경기 실사지수(BSI)는 75로 전달보다 5포인트(P) 급락했다. BSI는 100을 기준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기업이 경기 상황을 어렵게 본다는 의미다. 7월 BSI 75는 최순실 사태 충격으로 경제 심리가 나쁘던 지난해 2월 이래 가장 낮았다.

한국 경제 침체는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 산업 퇴조 여파가 크다. 중국 제조업 굴기나 미·중 무역전쟁처럼 대외 악재도 무시 못한다. 그런데 이것을 극복할 경제 주체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기업은 투자를 미루고, 소비자는 지갑을 닫았다. 재계에서는 최근 삼성전자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를 앞두고 '기업 팔 비틀기' 논란까지 불거졌다. 정부가 한쪽에서는 기업을 부정한 집단으로 내몰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투자를 강권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투자를 구걸하지 마라”는 지시를 내렸다. 삼성전자도 6일 김동연 부총리 방문에 맞춰 공개하려던 100조원대 투자 계획 발표를 미뤘다. 팔 비틀기 논란은 우리 산업계 심리 상태를 단편으로 보여 준다. 뒤에서는 불만이지만 앞에서는 눈치만 본다. 이런 식이면 투자를 하더라도 꺼림칙할 수밖에 없다.

'팔 비틀기'보다 '옆구리 찌르기' 기술을 보고 싶다. 비누 속 장난감 같은 유인책으로 기업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그런 묘책. 규제 혁파나 세제 혜택 같은 거창한 정책이 아니어도 된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경제 마지막 보루로서 잘 버티는 반도체 공장 현장을 깜짝 방문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한국 경제 발전 일등 공신이라며 경영자와 노동자를 직접 치켜세워준다면 이들 자부심은 얼마나 높아질까. 신바람 나는 투자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어 주는, 슬쩍 찔러 주는 기술이 아쉽다.
장지영 성장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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